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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노란 경고등

노란 경고등

작년에 우리 부부는 뉴욕에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기 두 부부와 함께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다.

뉴욕 공항을 출발해 로마에 도착해서 미리 예약해 둔 차를 빌렸다.

어른 여섯이 탈 수 있는 SUV였는데 디젤을 연료로 사용하는 차량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에서 일반적인 승용차는 거의 가솔린을 사용한다.

그러므로 이탈리아에서 생산된 디젤 차량은 우리 모두에게 낯이 설었다.

차에 대한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고 서둘러 공항을 빠져나왔다.

 

로마에서 피렌체까지 내가 운전을 했는데

어른 여섯과 여행가방을 실었음에도 디젤 차는 별로 힘든 기색이 없이

아주 든든하고 안전하게 우리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었다.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운전을 했지만

운전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으므로 차에 대한 무한 신뢰가 생겼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어느 날인가 피사에 들렀다가 친퀘테레를 다녀오는 일정이 있었다.

그날도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피사의 탑을 구경하고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친퀘테레로 향했는데

목적지를 GPS에 잘못 입력하는 바람에 엉뚱한 곳을 향해 방향을 잡았다.

낯선 길이어서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구불구불하고 경사가 급한 산길을 두어 시간 진땀을 흘리며 헤매야 했다.

 

결국 우리의 목적지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고

방향을 돌려 친퀘테레를 향했는데

이미  두어 시간과 긴 거리를 허비한 뒤였다.

 

고생을 해서 도착한 친퀘테레는 아름다운 경치로 우리를 맞이했는데,

엉뚱하게 허비했던 시간마저 다 보상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곳에서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어둑어둑 땅거미가 깔리더니 이윽고 어둠이 덮였다.

나는 출발하면서 연료 게이지를 확인했다.

숙소까지 겨우 갈 수는 있을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연료를 채우는 게 안전할 것 같아서 주유소를 찾아서 주유를 마쳤다.

그런데 주유구 옆에 또 하나의 주유구(?)가 있었는데

그때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러려니 하고 무심하게 지나쳤다.

그것이 디젤 차량에 필요한 요소수를 넣는 용도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연료도 충분하겠다, 숙소까지 안전하게 가는 일만 남았으니

마음을 놓고 출발을 했다.

그런데 출발하고 얼마 되지 않아  차가 움찔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차에 노란 경고등이 들어왔다.

노란 불빛에는 물병 같이 생긴 용기가 거꾸로 새겨져 있는데

거기서 물방울 몇 개가 떨어지는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도 어둠이 덮이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보는 노란 경고등은 우리 모두에게 걱정과 두려움을 전염시켰다.

 

어찌할 방도가 없어서 두려운 마음을 애써 누르며 계속 운전을 했는데

가끔씩 차가 움찔거리는 증세는 멈추지 않았다.

우리가 익숙한 가솔린 차 같으면 노란 경고등이 켜져도

대충 대처 방안이 머릿속에 있지만

디젤 차량의 시스템은 우리의 경험치 밖에 있었다.

 

한 친구의 아내는 형부가 자동차 정비소를 한 경험이 있다면서

경고등에 대한 질문을 하기 위해 미국으로 전화를 했다.

한 친구는 검색을 하더니 시동을 한 번 끄고 나면

다시는 시동이 걸리지 않을 수도 있으니 차를 세우더라도

시동은 끄지 말라고 경고를 하기도 했다.

희망을 가졌던 전화 연락은 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고속도로에 들어섰고

두려움은 눈덩이처럼 부풀기 시작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불이 환하게 켜진 주유소였다.

 

이탈리아의 유료 고속도로 옆에는 24 시간 문을 여는 주유소가 있고

차에 생긴 간단한 문제를  해결해 주는 정비사도 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구원의 빛이 있을 법한 주유소로 들어가서 차를 세웠다.

친구가 내려서 사무실 같은 곳으로 가더니 정비사 복장을 한 사람을 차로 데려왔다.

어차피 영어도 이탈리아어도 통용되지 않을 것을 알기에

나는 차의 문을 열고 다짜고짜 경고등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는 내가 가리킨 경고등을 보더니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고갯짓은 바로 희망의 상징적인 행위였다.

말이 필요 없었다.

그는 차의 시동을 끄라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3갤런 정도의 액체가 들어 있는 플라스틱을 들고 오더니 차에 넣었다.

그 액체는 요소수였다. 

디젤 차량에는 얼마 만에 한 번씩 요소수가 채워져야 한다는 사실을 그때까지 몰랐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시동을 걸었다.

노란 경고등은 말끔하게 사라지고 없었다.

두려움이나 걱정 같은 어둠도 마음속에서 싹 지워졌다.

우리는 안전하게 숙소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일이 있은 다음 노란 불빛을 보면

내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트라우마로 한동안 시달렸다.

그런데 어느날엔가 집에 돌아와서 그때의 일을 떠올리다가

노란 경고등을 다시 생각할 기회를 가졌다.

 

축구경기에서 엘로우 카드는 더 큰 위험이 발생하기 전에 예방하는 용도로 쓰인다.

신호등의 노란 불은 차를 세우거나, 빨리 진행하거나를 결정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한다.

신호등의 녹색 불빛이 바로 빨간색으로 바뀐다면

어떤 끔찍한 일이 일어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노란빛은 여유와 희망, 그리고 위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오월의 민들레가 한창이다.

 

 

 

 

 

 

Yellow Warning Light

Last year, my wie and I traveled to Italy with two other couples who were high school classmates living in New York. We departed from the New York airport and arrived in Rome, where we had rented a car in advance. It was an SUV that could accommodate six adults and ran on diesel, which was quite unfamiliar to us as most cars in the US use gasoline. Therefore, the diesel vehicle produced in Italy was a novelty for all of us. Without proper research on the car, we hastily left the airport.

I took the wheel from Rome to Florence, and despite carrying six adults and luggage, the diesel car handled the journey to our destination smoothly and safely, without showing any signs of strain. Despite it being my first time driving in Italy, I found no difficulty in driving, which instilled us all with infinite confidence in the car.

However, trouble arose.

One day, we visited Pisa and had plans to visit Cinque Terre afterward. I was behind the wheel that day. After admiring the Tower of Pisa, we headed towards our next destination, Cinque Terre. However, due to incorrectly inputting the destination into the GPS, we ended up heading in the wrong direction. Lost on unfamiliar roads, we found ourselves sweating and struggling for hours on winding and steep mountain paths.

Eventually realizing that we had set the wrong destination, we turned back towards Cinque Terre, but it was already after wasting several hours and covering a long distance.

Arriving at Cinque Terre after enduring hardships, we were greeted by beautiful scenery, and it felt like even the time we had mistakenly wasted was compensated for.

On our way back to the accommodation after spending a beautiful time there, darkness gradually enveloped the surroundings. I checked the fuel gauge before departing. Although it seemed we could barely make it to the accommodation, I decided it would be safer to find a gas station and refuel. However, there was another nozzle next to the gas pump, which I later learned was for adding the necessary additive for diesel vehicles.

Thinking we had enough fuel, and with only the journey to the accommodation remaining, we set off with relief. However, shortly after departure, the car seemed to stutter, and at that moment, a yellow warning light appeared. The warning light resembled a bottle-shaped container with a few droplets falling from it.

Darkness began to engulf my mind. The sight of the unfamiliar yellow warning light spread worry and fear among all of us.

With no other choice, I continued driving, suppressing my fearful heart. The occasional stuttering of the car persisted. While we might have had rough ideas of how to deal with a yellow warning light in a gasoline car, the system of a diesel vehicle was beyond our experience.

One friend's wife tried calling her uncle, who had experience working at an auto repair shop, to ask about the warning light. Another friend searched online and found advice suggesting not to turn off the engine once started, as it might not start again. Unfortunately, our attempts to contact someone familiar with the situation were unsuccessful.

In the meantime, we entered the highway, and fear began to swell like a snowball. Then, a brightly lit gas station caught my eye.

Next to the toll roads in Italy, there are gas stations open 24 hours, along with mechanics who can help with simple car issues.

Without hesitation, I pulled into the gas station that seemed to offer salvation and parked the car. One friend got out and went to what looked like an office, returning with a mechanic dressed in uniform. Knowing that neither English nor Italian would be of any use, I pointed directly at the warning light, my heart trembling with fear.

Glancing at the warning light I indicated, he nodded casually. His gesture was a symbolic act of hope. No words were needed. He gestured as if to indicate turning off the engine, then came back with a plastic container containing about 3 gallons of liquid, which he poured into the car. That liquid was the additive. Until then, I hadn't realized that diesel vehicles needed to be refilled with the additive every so often.

With a trembling heart, I started the engine. The yellow warning light disappeared completely. The darkness of fear and worry vanished from my mind. We were able to safely return to the accommodation.

In the days following that incident, the sight of a yellow light made my heart sink with trauma for a while. However, one day, when I returned home and reflected on that experience, I had the opportunity to think about the yellow warning light again.

In soccer matches, a yellow card is used as a preventive measure before a bigger risk occurs. The yellow light of a traffic signal provides the flexibility to either stop or proceed quickly. Just the thought of a green light turning red is terrifying.

The yellow light can be seen as a symbol of flexibility, hope, and comfort. Today, the dandelions of May are in full bl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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