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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Pienza 일기

Pienza 일기 - 시골장, 기념품

Pienza 일기 - 시골장, 기념품

 

Pienza가 성은 아니지만 

광장 쪽에서 들어오는 일종의 정문이 있고

반대편에도 문이 있다.

그런데 정문 앞의 작은 공원 같은 광장에는

이 주일에 한 번 장이 선다.

한 번은 옷과 모자, 그리고 액세서리 같은 물품을 파는 장이 서더니

그다음엔 과자와 초콜릿 같이 단 것을 파는 장이 섰다.

 

사실 다음 주에 장이 서는 차례인데

어제는 금요일인데 반나절 동안 장이 섰다.

야채와 과일, 그리고 신발과 평상복,

비누와 크림, 양말과 속옷을 파는 가게와 더불어

꽃가게도 문을 열었다.

얼마 전 이병헌이 나왔던 드라마에

트럭에 물건을 싣고 다니며 파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런 식이다.

단지 야채나 과일, 일용품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는 게 다르다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생선을 비롯한 해산물을 파는 가게도 문을 열었다.

사실 Pienza는 내륙 가운데 있어서 신선한 해산물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봉골레 같은 해산물 파스타가 이 동네 식당의 메뉴에는 들어 있지 않다.

해산물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침에 동네 한 바퀴 도는데 장이 서길래

아내에게 고해바쳤다.

 

"장이 서는데 생선도 파는 것 같아."

 

아내는 육류는 입에 대지 않는 대신 해산물은 좋아하기에

의중을 떠보느라 한 말이었다.

아내의 귀가 번쩍 뜨이는 것 같았다.

아내는 한걸음에 달려 나가

오징어와 새우를 샀는데 가격이 꽤나 센 것 같았다.

 

오후에 오징어를 데쳐서

초가 빠진 초고추장에 찍어 먹었는데

생일 뒤풀이를 거하게 한 느낌이 들었다.

오징어와 새우가 들어간 찌개에

쌀국수를 넣어 말아먹었고 밥도 말아서 배부르게 먹었다.

 

그리고 국화 화분도 사서 테라스에 놓았는데

분위기가 제법 근사했다.

 

그리고 집을 떠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니

손톱과 발톱이 꽤 자라서 일상을 살아가는데 조금 불편해지기 시작해서

손톱깎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며칠 전부터 하게 되었다.

마침 장에서 비누와 로션 등 미용 용품을 파는 가게에서 손톱깎기를 팔기에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는 심정으로 손톱깎기를 하나 샀다.

가게 주인은 두 가지 상품을 내게 보여주었는데

하나는 조금 작고 단순한 손톱깎기였고,

다른 하나는 크고 표면에 이탈리아 국기 무늬가 있는 것이어서

1유로 차이의 가격을 애써 외면하고

비싼 것을 골랐다.

 

나는 여행을 하면서 기념품이라는 것 자체를 사지 않는데

싼 가격에 이탈리아 국기 문양까지 있는 손톱깎기는 

어쩌면 최고의 기념품이 될 수 있어서

속으로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집에 돌아가서 손톱을 깎을 때마다

지난 기억들을 소환해서 추억에 젖을 수 있으니

기념품으로서는 최고의 가치를 지녔다고 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숙소 돌아와서 새로 산 손톱깎기로 손톱을 깎았다.

그런데 뭔가 산뜻하게 깎이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때 아내가 손톱깎기가 들어있던 포장을 내 눈에 들이대었다.

 

'MADE IN RPC' (중화인민공화국)

중국제였던 것이다.

 

아뿔싸!

 

싼 값에 이탈리아 여행 기념품 제대로 하나 건졌다고

기쁨으로 부풀어 오르던 가슴이

바늘구멍 난 풍선처럼 사그라들고 말았다.

 

아무려면 어떠랴,

손톱깎기 하나 생기니

긴 손톱 때문에 불편했던 삶이 말끔해진 것을.

 

오늘은 Pienza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손톱깎기 때문에 고마웠던 마음,

이탈리아 국기 무늬 때문에 행복했던 기분만

고이 간직한 채 Pienza여행의 마지막 장을 덮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