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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Pienza 일기

Pienza일기 - Montepulciano 느리게 느리게의 마술

Pienza일기 - 느리게 느리게 Montepulciano

오늘의 행선지는 Pienza에서 아주 가까운 Montepulciano였다.

차를 타고 가면 20 분쯤 걸리는 이웃이라면 이웃 같은 곳이어서

아껴 두었다가 이곳을 떠나기 전에 마침내 방문을 한 것이다.

Montepulciano는 나는 모르는 곳이지만

와인을 좋아하는 내 친구는

방문한 적도 없는 이곳의 명성을 이미 알고 있을 정도로

와인으로 유명한 곳이다.

아닌게 아니라 성벽 안의 상가의 대부분은

와인 시음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우리는 Montepulciano로 가기 전에

산 중턱에 있는 sanctuary of the Madonna di San Biagio라고 불리는

성당에 먼저 들리기로 했다.

비교적 주차가 용이한 것 같아서 잠시 거기서 머물다가

걸어서 최종 목적지까지 가기로 했다.

 

그런데 거기에는 아주 작은 카페 같은 곳이 있어서

분위기를 무척이나 타는 아내가 커피 한 잔을 하고 가자고 했다.

마침 가게 문을 열고 있는 주인에게 커피 한 잔을 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물론이라고 대답을 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의 실수라면 실수였다.

 

-Enoteca-

 

나중에 알고 보니 와인 가게였던 것이다.

커피를 주문했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먼저 쿠키 한 접시와

특별히 구운 음식을 올리브와 함께 작은 접시에 담아

우리가 앉은 테이블에 가져다 주었다.

앞으로 다가올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때 먹는

특별한 음식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호두와 호두를 깰 수 있는 기구도 작은 바구니에 담겨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유리잔에 담긴 커피가 배달되었다.

 

그것은 우리가 한국에서 마시던 비엔나커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데

커피 위에 아이스크림 대신 아몬드 크림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가 주문한 커피 외에

주인 마음대로

이것저것 챙겨서 세트로 메뉴를 구성해서 우리에게 강매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Enoteca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곳에서는

그렇게 음식을 서브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바가지를 쓴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의 예술적인 감각으로

예쁘게 꾸며 놓은 가게에서

전부 오르가닉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었다는 생각이

억울함을 해소시켜주었다.

 

주인의 이름은 스텔라였는데

자기 가족들의 농장에서 생산한 재료로 만든 와인과 음식을

손수 만들어서 손님들에게 대접하고 있었다.

 

그러니 모든 음식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커피 한 잔이 내 입에 흘러들어오기까지 거의 30 분이 소요되었다.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갔다.

시간도 멈추었다가 마지못해 다시 흘러가는 듯한 착각을 했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다른 그룹의 손님이 가게를 찾았다.

커피를 마시고 가게를 떠나려고 계산을 부탁했는데

뭘 그리 서두르냐고 스텔라가 핀잔인듯, 핀잔이 아닌듯한 반을을 보였다.

그러더니 다른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의 음식을 

서두르지도 않고 준비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20 분 정도가 흘렀다.

 

다른 테이블의 음식 서빙이 끝난 것 같아서

눈치를 보며 다시 계산서를 부탁했다.

드디어 가게를 떠날 수 있게 되었다는 희망이 보이는가 싶었다.

그때 가게 앞으로 검은 개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스텔라는 검은 개를 보고 자기의 동네 친구라고 내게 소개를 했다.

어쩌겠는가, 나는 마지못해 개에게 '하이!' 라고 하며 인사를 했다.

 

스텔라는 나에게 다시 잠시 기다리라고했다.

이탈리아의 시골에서는 돈을 내기도 무척 힘이 들고 인내심을 요구하는 것 같다.

한 5 분 정도의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갔다.

스텔라는 커다란 그릇에 무언가 음식을 준비해서

그 개를 옆으로 데리고 가더니

먹으라고 권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에게 돈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런데 계산하는 것도 시간이 걸렸다.

자기 그림이 인쇄된 종이에 펜으로 음식 종류와 가격을 썼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Check'였던 것이다.

 

드디어 해방이 되는 줄 알았다.

계산을 하고 등을 돌리려는 순간 스텔라는 나를 다시 돌려세웠다.

나에게만 특별히  선물을 주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그림이 있는 카드와 함께 자기 남편이 쓴 시가 인쇄된 종이를

고이 접어 내게 건네는 것이 아닌가.

 

원하지도 않는 음식값을 지불해야 했고

돈 계산 할 때까지 거의 30 분을 허비해야 했음에도

전혀 억울하지도 않고 짜증도 나지 않았던 것은

스텔라의 '느리게 느리게'라는

마술에 걸려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