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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Pienza 일기

Pienza 일기 - medieval town, minimal life

Pienza 일기 - medieval town, minimal life

14 Elisa.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골목의 끝에 있고

골목이 끝나는 곳에 자그마한 광장이 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수돗물을 받아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

그리고 광장은 집들로 둘러싸여 있는데

막힌 것 같지만 그 집 뒤로 갈 수 있는 작은 길들이 있어서

들녘을 바라보거나, 석양을 만나고 싶으면

1 분도 걸리지 않아서 그런 곳에 닿을 수 있다.

 

재어 보지는 않았지만  Pienza라고 불릴 수 있는 노른자위는

길이로 500 미터, 가로로 200 미터 정도 될 것 같다.

(물론 눈대중이다.)

그리고 Pienza의 중심엔 성당이 둘이 있고

관공서와 교황 비오 2 세의 여름 거주지와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골목마다 식당이며 칵테일 바와 와인바가 넘쳐나며

이 지방 특산물인 양의 우유로 만든 치즈를 파는 가게도 몇이 있다.

건물의 2층과 3 층엔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전 주민이 2 천 가량이 된다.

그러고 보면 내가 먹고사는 일과 관련 있는 건 별로 없어 보인다.

 

40 년 가까이 미국에서 살았지만

아직까지도 한국음식에만 목을 매는 나 같은 사람이

이곳에서 한 달을 버틸 일이 처음에는 까마득하기만 했다.

 

원래 이곳에서 한 달 살아보기를 하고

스케줄을 짤 때 로마에서 비행기를 내려서

한국 음식을 위한 식재료를 구입할 예정이었으나

비행기 도착이 늦어지는 바람에

모든 계획이 틀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하고

물 설고 낯선 이곳 Pienza에 도착한 것이다.

 

첫날은 길 건너 할아버지 햄버거로 저녁 식사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동네 슈퍼에서 간단히 식재료를 구입했다.

 

저녁 식사로 달걀 프라이 두 개를 흰밥에 얹어서

간장만으로 간을 해서 먹는데도 그렇게 맛이 있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아무런 반찬도 없이

동네 마켓에서 사 온 쌀과 달걀, 그리고 간장으로만

한 끼를 먹었어도 그 뿌듯함은 무게를 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또 그다음 날은 

아내가 집에서 가지고 온 고춧가루로

동네 채소가게에서 구입한 양배추로 만든 김치를 곁들여

계란 비빔밥을 먹었는데

마치 천상에서 한 끼를 먹는 것처럼 황홀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다 포기하고 마음을 비우니

동네에서 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식재료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포기하는 마음,

빈 마음,

 

그리하여 그 빈자리에 무언가 채워지면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고 기쁨인 것이다.

중세시대의 마을에서

최소한의 재료로 살아가며

오늘도 행복해지는 법을 실습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