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 살아 있는 것
오늘 아침 산책을 다녀와서 아침을 뭘로 먹을까 고민하는데
아내가 빵을 사다 먹자고 했다.
아내가 구글로 검색을 했는데 마침 한 곳이 눈에 띄었다.
며칠 돌아다녀 보아도 전문적으로 빵을 구워 파는 곳을 만날 수 없었는데
빵집이 있다는 건 반가운 소식이었다.
Pienza의 인구가 이천 명 정도 된다고 하는데
그럴듯한 빵집 하나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아닌가.
그런데 아내가 검색한 빵집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과일과 채소를 파는 가게가 있었다.
우리도 매일 과일 몇 개 감자 한 두 개씩 사다 먹어서
아주 눈에 익은 곳이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집에서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을 정도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데 아내 말로는 그 빵집의 리뷰가 2 년 전을 끝으로 보이지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팡 사는 걸 포기하고
마을 입구 5 거리에 있는 카페에서
이탈리아 식으로 달디 단 케이크와 커피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했다.
그런데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 어귀에
작은 화랑이 하나 있는데
아침 식사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주인을 만났다.
인사를 건넸더니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었다.
작은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며 작품을 관광객들에게 파는데
이사벨라라는 이름을 가진 예쁜 아가씨에게
그 빵집에 대해 물었다.
"빵집 주인은 2 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암으로."
순간 내 가슴 한쪽으로 서늘한 바람 같은 것이 밀려들어왔다.
그렇게 사람도, 빵집도 그 자리에서 사라진 것이다.
소멸하는 것과 소멸해가는 것에 대해
조금씨 더 예민해지는 나이가 된 탓인가,
나와 별 관계가 없이, 더군다나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
빵집 주인의 소식은 하루 종일 내 마음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그럼에도 빵집 자리에 새로 문을 연 과일가게에서 사온
과일을 먹으며
비록 빵집은 없어졌지만
아주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살 수 있는 곳이 코 앞에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그래서인지 복숭아도 단 맛과 함께 신 맛도 적당히 배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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