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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제주살이 - 쓸데없는 이야기 4

제주살이 - 쓸데없는 이야기 4

제주시에서 보름 동안 머문 호텔은

앞에 넓은 차도가 있어서 차량의 왕래가 많았지만

상대적으로 인도에는 인적이 뜸했다.

 

호텔 옆 길에는 음식점과 목욕탕, 빵집 같은 가게들이 있는데

사람들이 그리 북적대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다가다 눈여겨본 칼국수 집도 있었다.

국수라면 거절 못하는 우리 부부가

제주시에 있는 동안 한 번은 들려야 할 곳으로

바로 그 칼국숫집을 점찍어 놓았다.

 

어느 날 점심을 먹으러 나왔는데

당연히 그 칼국수집으로 발길이 흘러가고 있을 때

눈에 들어온 곳이 있었다.

 

'우리솥 해장국'이라는 상호가

아주 겸손하게 붙어 있는 곳이었다.

 

평소 이 식당 앞을 오가며

안쓰럽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일요일 아침 일찍 성당에 가고 오던 길에

문이 열려 있어서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그 손님 없음의 상황은

우연인지는 몰라도

내가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변함없이 계속되었다.

 

나는 걱정이 팔자인 사람이다.

'우리집 해장국'은 나에게

걱정거리를 하나 더 얹어준 곳이다.

"너무 손님이 없어서 운영이 될까?" 하는

그 식당에는 도움이 하나도 되지 않는 걱정을

오다가다 빠지지 않고 하던 차였다.

 

한국말이 능숙하지 않은 우리 큰 아들이

별로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우울하다'는 표현을 쓰는데

나도 '우리솥 해장국'이라는 상호를 '우울한 해장국'으로 바꿔 부르곤 했다.

 

칼국수집으로 향하던 발길이 '우리솥 해장국' 앞을 지날 때

나의 걱정은 조건반사처럼 뛰어나왔다.

그때 아내가

"그렇게 걱정이 되면 오늘 점심을 여기서 해결하면 되잖아요."

라고 말을 하며

'우리솥 해장국'의 문을 열고 안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것은 일종의 구원 같은 순간이었다.

내가 이런 종류의 음식을 좋아한다.

그러나 '우리솥 해장국'을 찾은 것은

걱정만 하지 않고

뭔가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한다는,

일종의 자기만족의 행위이기도 했다.

 

그런데 몇 되지는 않지만 거의 모든 테이블이

손님들로 차 있었다.

내 예상과는 다른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자리를 잡고 아내는 황태 해장국을,

나는 소고기 해장국을 주문했다.

나의 입맛은 단순한 편에 속한다.

 

맛있는 맛,

그저 그런 맛,

아주 맛없는 맛.

 

이 세 가지가 내가 맛을 평가할 때 쓰는 표현 모두 다이다.

그런데 내가 먹은 소고기 해장국은 맛이 있었다.

해장국도 해장국이지만 돌솥밥이 얼마나 맛이 있던지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해장국이 담긴 뚝배기를 다 비웠을 때

이마에 땀이 났다.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이마에 땀이 날 때,

나는 포만감과 함께 찾아오는 흐뭇함을 느낀다.

 

나는 아주 만족스러운 한 끼 식사를 했다.

그리고 우울한 해장국이라고 한 것도

마음속으로 사과를 했다.

무엇보다도 제주시를 떠나기 전에

걱정거리 하나를 덜어 놓을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몰랐다.

 

길다면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참 많은 사람들과 만남 기회가 있었다.

첫눈에 내 판단 기준으로 참 '우울하다'라고 하며

거리를 두고 멀리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런 나의 태도나 말투 때문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또 얼마나 될까?

 

앞으로는 깊은 소고기 해장국의 맛처럼 

그윽한 인격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친교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만들며 앞으로의 삶을 만들고 싶다.

 

언제 다시 제주를 찾을 때면

다시 한번 찾고 싶은 곳,

'우리솥 해장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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