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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쓸데없는 이야기 -서귀포 어느 김밥집 이야기

쓸데없는 이야기 - 서귀포 어느 김밥집 이야기

제주 여행을 하면서 많이 먹은 음식 중 하나가 김밥이다.

 

처음엔 제주가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다 보니

여행 중에 당연히 생선과 해물을 많이 먹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그런데 며칠 생선과 해물류를 먹다 보니

내 음식에 대한 혀의 정체성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사실 나는 생선과 해산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며칠 제주에 넘쳐나는 생선구이 생선 조림 같은 음식을 먹다 보니

내 스타일의 음식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밥과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같이

지극히 평범한 한국인의 밥상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그런데 그런 식당은 별로 눈에 띄질 않아서

꿩 대신 닭이라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김밥에 눈이 갔다.

김밥집 간판은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쇠소깍이라는 곳을 둘러보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인적이 뜸한 곳에 자리한 아담한 김밥집 하나를 발견했다.

 

'소원 김밥'

 

아내는 거기서 김밥을 샀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와서 저녁식사로

김밤을 먹었다.

김밥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김밥 맛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나는 맛집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아니고

또한 이 집을 맛집으로 광고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야무지게 만 김밥은 간도 잘 되어서

내 입에 딱 맞았다.

 

그런데 나는 김밥을 먹으며 내 특기인

쓸데없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아내의 말로 김밥 집의 주인이

젊은 남자라는 말을 듣고 쓸데없는 생각의 꼬리가 이어졌다.

 

'소원'은 아마도 김밥집주인의 딸일 것이다.

그리고 예쁜 딸의 이름을 따서 상호를 정했을 것이다.

김밥의 맛을 내기 위해 이러저러 노력을 했고

지금에 이르렀을 것이다.

매일 김밥 하나하나를 정성을 다 해서 말고

손님에게 정성을 다 할 것이다.

 

누군가가 사업을 시작하면서

자기 자식의 이름을 걸 때는 그만큼

자식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을 거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옆구리 터진 김밥,

맛없는 김밥을 먹으며

누군가는 그 김밥집에 대한 저주를 늘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맛난 김밥을 먹을 때 

김밥집 이름을 입에 올리며 온갖 칭송을 늘어놓을 것이다.

 

그러니 자식의 이름을 걸고

김밥집을 열었을 때는

주인의 각오가 남달랐을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나는 김밥을 먹으며

그렇게 김밥집 딸을 상상했다.

 

그런데 서귀포를 떠나기 전 날

우리는 다시 그 김밥집을 찾을 기회가 생겼다.

 

내가 그리 궁금해하던

'소원'이라는 이름의 연유를

아내가 주인에게 물어본 것이다.

 

결론적으로 '소원'이라는 김밥집 이름은

딸과 전혀 상관이 없이

먼저 있던 가게 이름을 그대로 따서 지은 것이라고 했다.

내 상상력에 금이 가고 말았다.

 

그러나 아무래도 상관없다.

김밥만 맛있으면 그만인 것을.

 

마침 그날은

아내인지 여자 친구인지 젊은 여자도 주인을 도와

일을 하고 있었다고 아내가 덧붙였다.

 

-그래 맞아,

앞으로 두 사람 사이에 예쁜 딸이 태어나면

이름을 소원이라고 붙이면 되지 뭐.-

 

나는 이렇게 소원 같지도 않은 소원을 빌며 그곳을 떠났다.

 

나중에 보니 소원의 한자가 다음과 같은 뜻을 품고 있었다.

실망.

 

조선시대 왕의 후궁에게 내리던 정4품 내명부의 위호이다. 1428년(세종 10) 숙원(淑媛)과 함께 정4품에 속하였으나, 『경국대전(經國大典)』 이후 소원은 정4품, 숙원은 종4품으로 나누어서 구별되었다. 이후 이 조항은 『속대전(續大典)』, 『대전통편(大典通編)』, 『대전회통(大典會通)』 등 몇 차례의 법이 개정되었음에도 조선왕조 말기까지 변동 없이 유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