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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그대 그리고 나 - 원숭이 두창

그대 그리고 나 - 원숭이 두창

오늘 아침엔 일요일 아침에 하던

바닷가 산책을 하지 않고

Jamaica Bay Wildlife Refuge에 다녀왔습니다.

우리 집에서 보이는 지평선과 수평선이 발그스름해질 무렵이었으니

아침 다섯 시쯤 집을 나섰을 겁니다.

 

Jamaica Bay Wildlife Refuge는 출퇴근길에

지나다니는 곳입니다.

전철 창 너머로 물이 보이고

그 물과 물이 둘러싸고 있는 숲 위로

여러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다닙니다.

그리고 물 위를 여유롭게 산책하는 백조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Jamaica Bay Wildlife Refug는 말하자면 작은 섬입니다.

Jamaica Bay의 물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자동차나 전철을 타고 지나치기만 했지

직접 발을 디뎌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생겼는지 늘 궁금하던 차에

오늘은 시간을 내어 찾아가기로 작정을 한 것입니다..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이 맑아서

내심 아름다운 일출을 기대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청바지에 얇디얇은

반팔 티셔츠를 입고 나섰는데

이 복장 상태가 아침 산책 겸 해맞이를 완전히 망쳐놓을 줄을

숲 속에 첫 발을 들일 때까지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Visitor Center 파킹장에 차를 두고

해가 뜨는 쪽으로 향했습니다.

JFK 공항 쪽에서 해가 뜨기에 길을 건너서

숲으로 바삐 걸음을 옮겼습니다.

 

숲 속은 어두웠습니다.

 

울창하다는 표현이 이럴 때 쓰이는 것 같습니다.

첫 발을 숲 속이 디밀었을 때

뭔가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습니다.

아직 남아있던 간 밤의 잠 기운이

한 순간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상쾌함을 즐길 여유도 없이

모기떼의 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어떤 심사위원이

'공기 반 소리 반'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 숲 속은 과장 없이

'공기 반 모기 반'으로 채워져 있다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모기떼는 어떤 방어막도 없는

나의 팔과 목덜미를 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녀석은 티셔츠를 뚫고

나의 배와 등까지 공략을 했습니다.

 

중간에 포기할 수 없어서

달려드는 모기떼를 쫓아버리기 위해

팔을 휘저으며 숲길을 10 분쯤 걸었을 때

숲의 터널 끝에 빛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왕 시작한 것 끝을 봐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드디어 물 가에 도착했습니다.

해가 조금씩 솟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엔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방문자가 있었습니다.

 

사진 찍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대포'(800mm 망원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를 들고 새들을 찍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긴 팔의 Wind Breaker를 입고 있어서

모기 걱정을 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은 진리 그 자체였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새벽 숲을 산책하려는 마음을 먹은 것이

무식의 소치였음을 그 사람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모기들은 쉼 없이 귓가에서 잉잉대며

내 방어태세가 좀 허술해진 것 같다 싶으면

어김없이 팔뚝과 목 뒤를 공략했습니다.

 

물 위에 떠다니는 Canadian Goose를

찍는 둥 마는 둥 하고

등을 돌려 단숨에 숲 속에서 탈출을 했습니다.

 

우리 차에 도착하니 옆에서

한 사람이 옷을 갈아입고 있었습니다.

물론 긴 팔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곤충 퇴치 약도 몸에 골고루 뿌리고

동물 눈에 띄지 않도록 위장복까지 걸쳤습니다.

영화에서 보는 sniper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 숲 속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준비는 했어야 했는데

몰라도 너무 몰랐습니다.

 

아내는 마침 긴 팔 셔트를 입어서

모기에게 당한 피해는 경미해 보였습니다.

차에 타고 보니 내 팔 위 쪽은

모기한테 물려서 색긴 상처가 부풀어 올라서

볼만했습니다.

 

마침 차 안에 있던 손 소독제를 바르니

가려움증이 좀 수그러드는 것 같았습니다.

 뒷목을 만져보니

콩만 한 크기의 상처가 예닐곱 개가 생긴 것 같았습니다.

 

아내에게 좀 살펴보라고 했더니

아내의 입에서 참으로 명랑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덧붙이는 소리가

"원숭이 두창 같아!"

 

원숭이 두창을 보기 본 적이 있어서

그렇게 쉽게 말을 하는 것인지------

원숭이 두창 같이 생겨먹은 모기에게 물린 상처는

그 뒤로도 몇 번이나 아내를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원숭이 두창 같은 나의 상처는

따지고 보면 모기에게 내 피를 보시함으로 생긴 것입니다.

그러니 영광과 자비의 표시라고 우겨볼 만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상처의 생김새가 

아내에게 유쾌함을 선사했으니

선행을 베푼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이 정도면 극락이건 천당이건

말석 하나는 맡아놓은 것 아닙니까?

 

아내가 또 원숭이 두창 같이 생긴 내 목덜미 상처를 보고 웃으면

나도 웃음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내 상처로도 남을 웃게 해주는 

아름답고 숭고한 마음이 묻어나는,

그런 웃음을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