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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기억의 아픔, 혹은 느낌의 상처 1 -짙푸른 색

기억의 아픔, 혹은 느낌의 상처 1 - 짙푸른 색

 

어둠이 몰려와 온통 암흑이 되기 바로 직전

바다는 짙푸른 빛을 띠게 된다.

짙푸름이 내 눈을 통해  내 안으로 들어오면

나는 순수한 아픔의 응고체가 된다.

나는 밤이 오기 바로 직전

푸른 바다를 모며 까닭 모를 슬픔의 병을 앓는다.

 

-언제부터였을까?-

 

짙은 푸른색을 마주치면 내 안에서

조건 반사처럼 슬픔이 궐기를 하기 시작한 것은.

 

아주 낡고 닳은 내  유년 시절의 기억을 꿰어보면

몇 가지 장면이 나타난다.

 

나는 서울의 변두리 수색이라는 곳에 살고 있었다.

허름한 집들과 먼지 날리는 들판,

거기서 나는 밤늦을 때까지 동네 아이들과 놀았다.

학교 들어가기 훨씬 전이었으니

네댓 살 때였을 것이다.

 

그때의 내 기억 속에 남는 사람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뿐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 기억 속에 없었고,

그 이후에도 상당한 기간동안

두 분에 대한 기억의 실타래는 찾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이었다.

집 안이 분주스러웠다.

사람들이 모여 무슨 잔치 음식 같은 걸 만드는 모양이었다.

누구인지 기억에 없지만

친척 아주머니 한 분이 내게 말했다.

 

"네 새어머니 시집오는 날이니 나가 놀아라."

 

나는 하릴없이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무슨 세간살이 같은 것이 실려 있는 

트럭이 한 대 서 있었다.

 

트럭은 진한 푸른색이었다.

(내 기억이 왜곡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나는 집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밀려나는

분리의 고통을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진한 푸르름으로 대표되는 고통, 혹은 슬픔은

기억의 갈피에 접혀 있다가도

내가 배척되거나 울타리에서 밀려나는 느낌을 받을 때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나를  짙푸른 슬픔 속에 가둬버리곤 했다. 

그 짙푸른 빛이 주는 천형은

하늘의 뜻을 알아야 하는 오십을 넘기고도

계속될 정도로  질기고도 억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