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일기 - 나의 해방일지
넷플릭스에서 '나의 해방 일지'라는 드라마를 보는 중이다.
아내가 지인의 결혼식 때문에
집을 떠나 있기에 드라마 속의 이야기는
잠시 냉동 상태에 있다.
드라마는 꼭 아내님이랑 같이 봐야 하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규율이 있기 때문이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하고 드라마를 보는데
거의 대부분 드라마의 초반부, 혹은 중반부터
나는 꼬박꼬박 졸기 일쑤이다.
드라마가 웬만큼 재미있고 스릴이 넘치지 않는 한,
누군가 여러 사람이 힘들여 만든 작품을
홀대하거나 무시해버리는 나의 태도는
거의 공식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런데 '나의 해방일지'는
거의 마지막까지 졸지 않고 보는 편이다.
맨 정신으로 끝까지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대충 줄거리는 꿰고 있으니
드라마를 만든 사람들에게 작은 성의는 표시하는 셈이다.
배경은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도의 한 농촌이다.
부엌과 실내 가구를 제작하는 아버지,
그리고 살림을 하며 집에 딸린 밭에서
농사를 짓는 어머니,
그리고 서울로 출퇴근하는 삼 남매의
지루하고 쳇바퀴를 돌리는 듯한 정형화된 삶에
한 청년이 흘러 들어오게 된다.
어둠의 세계에서 제법 힘을 쓰던 구 씨가 그 청년인데
아무 영혼 없이 삼 남매 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하루하루를 겨우겨우 살아가는데
그의 유일한 낙이라며 낙이라고 꼽을 수 있는 것이
일과가 끝난 뒤 어둔 방에서 소주 두 병을 홀로 마시는 일이다..
소주 두 병은
굴레 씌워진 구씨의 삶에서
유일한 자유 행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주 두 병을 마시는 일은
하루 일과가 끝나고 드리는 수도자의 저녁 기도와도 같은 것이다.
적어도 구씨에게는.
아내님이 없는 요즘우리집도
아침에 해가 돋아도 동굴과 같은 기분이 든다.
일이 끝나고 집에 가도
캄캄한 어둠이 계속 이어지는 것 같다.
삶의 굴레.
그 굴레에서 해방되고 싶어서
어제는 한 동안 마시지 않던 맥주 두 캔을 퇴근 길에 샀다.
저녁 식사를 하고 맥주를 마시는데
구씨가 생각났다.
구씨와 맥주 한 캔 나누어 마시고 싶었다.
그런데 맥주를 마시며 생각해 보니
나의 맥주나 구씨의 소주 또한
진정한 해방의 도구는 될 수 없는 것 같았다.
맥주나 소주 또한 삶의 굴레에 엮이는
또 하나의 짐이 될 뿐이었다.
아내님이 없는 집은 동굴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정말 '안해'인 것이다.
혼자가 아닌 안해와 마시는 맥주 두 캔이야말로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진정한 해방의 도구가 아닐까?
내일 아내가 돌아온다.
아내가 돌아오면 함께 맥주를 마실 것이다.
함께 맥주를 마시고 난 뒤에야
나는 일주일 동안의 동굴 생활을 청산하고
비로소 '나의 해방 일지'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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