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ny 줍기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내가 미국 화폐단위 중 가장 그 가치가 작은
penny를 줍기 시작한 것은.
penny는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 존재 가치는 거의 없는 동전이다.
주머니에 penny가 몇 개 있다는 건
거추장스러움을 더 할 뿐,
돈이 내 주머니 속에 있다는 소유의 뿌듯함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는 걸 의미할 뿐이다.
30 년이 훌쩍 넘었지만 미국에 처음 왔을 때에도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최소 단위는 Quarter(25센트)였다.
"Do you have a quarter?"
지금도 Quarter는 주차기 미터에 넣을 수도 있고
자판기에 사용할 수도 있지만
penny를 필요로 하는 곳은
잔돈 계산 외에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괜찮을 것 같다.
잔돈으로 Penny를 받을 때
안 받으면 손해 보는 것 같아 섭섭하고,
받으면 귀찮은 존재가 바로 penny인 것이다.
있어도 누구도 원하지 않는 존재가 바로 penny다.
그런데 요즈음은 Quarter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30 년이 넘은 세월이 흘러서인지
인플레이션의 영향 때문에 구걸하는 액수가
1 달러가 보편화되었고,
때론 아주 특이하게 2 달러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사람도 적지 않게 보았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길에 떨어진 penny는
1 달러를 구걸하는 사람의 눈에도
아주 하찮은 존재여서
허리를 굽혀 주우려는 노력을 아예 하지 않게 만든다.
말하자면 penny는 존재는 하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아니, 존재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는
아주 불쌍하고 비참한 신세를 가지고 세상을 떠돌거나
잊힌 존재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길에 떨어져 있어도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다 보니
penny의 외모는 때가 몇 겹이나 묻어 있거나
파랗게 녹이 슬어 있어서
쉽사리 손을 대기에도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런데 나에게 penny를 줍는 습관이 생겼다.
그것은 아무래도 세 번째 손주인 Penny가 태어난 뒤부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Penny의 엄마인 큰 딸이
새로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Penny라고 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고
사실 속이 많이 상했다.
-세상에 많고 많은 여자 아이의 예쁜 이름이 있는데
하필이면 Penny가 뭐람?-
딸과 사위가 원망스러웠다.
그렇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새로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짓는 주도권은
아이의 부모에게 있는 것이니 말이다.
한 다리 건너 있는 나에게는 아무 권한이 없었다.
큰 딸 부부는 두 사람 모두가
'비틀스'의 광팬이다.
그래서 아이들 이름도 비틀스 노래의 가사 중에 등장하는
사람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첫째 손녀는 Sadie이고
둘째인 손자는 Desi(Desmond),
그리고 셋 째가 바로 Penny(Penelope)이다.
나는 비틀스를 알고 그들의 노래를 몇 곡을 알기는 하지만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아이들 이름이 어느 곡에 등장하는지
관심도 없다.
그러나 셋째 손주의 이름이
Penny로 지어진 것은 내가 되돌릴 수가 없는
운명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화폐 단위에서도 가장 하찮은 penny와 같은
이름을 나누어 갖게 된 우리 셋째 손녀를 생각하면서
나는 길거리나 세탁소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동전 penny를 줍기 시작하기 시작한 것 같다.
세상에 태어난 어떤 사람도 고귀하다는 말을 들으며 살아왔지만
최근까지도 그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셋째 손녀의 탄생은
'Penny'의 가치를 다시 생각할 기회를 갖게 해 주었다.
-세상의 그 누구도 가치 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다.-
나는 오늘도 penny 줍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penny'를 주우며 손녀 'Penny'를 떠올릴 것이다.
외모나 인종, 빈부귀천, 종교를 떠나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고 존귀하게 태어났음을
노골적으로는 아니어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부정하던
지난날을 참회하며
정성스레 가게 바닥을 쓸 것이다.
그리고 눈에 띄는 페니를
허리 굽혀 주우며 하루를 열 것이다.
https://blog.daum.net/hakseonkim1561/2710#none
Penny의 돌 케이크 penny로 장식을 했다.
두어 달 동안 주운 penny.
깨끗하지는 않아도 정성스레 목욕을 시켰다. 3 달러 가량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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