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아픔, 혹은 느낌의 상처 2 - 검은색, 혹은 어둠
"밖에 나가서 놀아라"라고 한
친척 아주머니(아니면 친척 할머니인지 기억이 없다.)의 말씀은
집 안에서 다른 식구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앞으로의 내 삶을 결정짓는 예언이 되고 말았다.
나는 "밖에 나가서 놀아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이미 내 마음에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던 것 같다.
그 말이 줄 수 있는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나는 이미 울타리 밖으로 나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와 (새) 어머니에 대한 내 최초의 기억은
다섯 살, 아니면 여섯 살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수색에서 살다가 제기동으로 이사 갈 때까지
할아버지와 할머니 손에서 컸는데
아마 자주 임지를 옮겨야 하는 아버지의 직업 때문이었을 거라고 추측을 한다.
왼쪽 가슴에 흰 손수건을 달고
숭례 국민학교에 입학하던 첫날,
할아버지와 함께 학교에 갔는데
엄마 아버지와 함께 온 아이들이 부러웠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렇게 부모님과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의
키가 자라기 시작했다.
그런데 언젠가 아버지와 (새) 어머니와 함께 지낼 기회가 생겼다.
바로 아래 동생이 태어나기 전이었으니
기껏해야 다서 여서 살 때였을 것이다.
할아버지께서 나를 데리고 강원도 인제에 가셨다.
인제는 21 사단에서 대대장을 하실 때
세를 살고 계시던 집이 있던 곳이다.
나는 동네 아이들에게
계곡에서 가재를 잡아 아궁이 불에 구워 먹는 법을 배웠고
그 아이들과 냇가에서 땅 짚고 헤엄치며 놀았다.
그 집의 한 귀퉁이에는 닭장이 있었는데
나는 개구리를 잡아 닭들에게 상납(?)을 했다.
닭들이 달걀을 낳으면 나는 수거를 해서 어머니께 갖다 드렸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내가 달걀을 먹은 기억은 전혀 없다.
삭제되어버린 기억 때문에
울타리의 높이가 더 올라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 인제라는 곳이
강원도 산골 중에서도 산골이어서
그때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부터 20 년이 지나 12 사단 51 연대에서 근무를 할 때
RCT(Regiment Combat Team - 연대 전투단) 훈련 시
집결지가 인제였다.
20 년의 시간이 지난 나의 군대 시절에도
인제는 전기와 인연이 없는 곳이었다.
그렇게 인제는 어둠, 혹은 밤이라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는 곳으로 내게는 인식되었다.
어느 날 저녁에 아버지와 (새) 어머니,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외출을 했다.
군용 지프차를 나고 갔는데 거기가 어딘지 무슨 목적으로 갔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날 밤 나는 혼자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아버지가 나에게 두 분은 들릴 데가 있으니
혼자 집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50 년도 더 지난 시간 속의 인제라는 곳의 어둠은
어둠이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이 어두웠었다.
다섯 살 아이의 혼자 가는 밤길 주위에 널린
어둠의 깊이와 농도는 도저히 알 수 없을 정도였다.
하늘의 초롱초롱한 별빛은
땅 위의 어둠이 얼마나 엄청난 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어둠 속에서 나는 혼자였다.
그렇게 밤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와서
이불을 덮고 잠을 청했지만 쉽사리 잠을 잘 수 없었다.
오후 늦게 커피를 마신 날처럼 쉽사리 잠 속으로 가라앉을 수 없었던 밤,
나는 속으로 울음을 삼켰다.
낸 눈에서 눈물은 말라버렸고 그 후로 어린 시절 별로 운 기억이 없다.
나는 혼자였고
내 안의 울타리는 내 키를 훌쩍 넘게 자라 버리고 말았다.
그 울타리는 유리벽 같았다.
물과 기름처럼
한 공간에 있어도 따로따로 존재하는 관계,
그것이 바로 나와 부모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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