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엔 주말에만 집에 들어가다 보니
집에서 보내는 하루가 그렇게 분주할 수가 없다.
그런데 어제는 이런 저런 까닭으로
집에 우리가 쓸 수 있는 차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소파에 등을 맡긴 채 아내와 드라마 세 편을 보았고
'나는 가수다'도 보았다.
그러다가 이층 창 밖의 베란다를 바라보니
난간 위에 다육이 화분이 보였다.
바쁠 때는 그 녀석들이
차창으로 지나가는 풍경처럼
눈 가로 그냥 스쳐 지니갔었는데
어제는 내 마음 속까지 들어와 심상이 맺혔다.
남는 것은 시간,
가만히 들여다 보니
잔잔한 평화가 내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포도주는 입으로 흘러들고
사랑은 눈으로 흘러든다'는
Yates의 시를 꺼내들지 않아도
가만히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들여다보는 일은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일이다.
내 마음엔 그들이 내어주는 사랑과 평화가
잔잔히 흘러들어오고-----
내 손가락 마디 두 개만큼의 키로 자란 다육이
작아도, 그녀석이 간직한 사랑스러움은
우리집 이층 지붕보다 10미터는 더 크게 자란
단풍나무 못지 않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저 그림이 있는 화분은
언젠가 아내가 딸들과 모여서
그림을 그려 넣었던 바로 그 화분이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추억도 다시 그 생명을 얻게 되는 것 같다.
사랑과 유쾌함으로 찰찰 넘치던
그 날, 그 저녁 시간이
저 쬐그만 화분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다가
다시 살아나는(replay) 것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다람쥐가 여기저기 다육이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래도 꽃을 피웠다.
꽃을 피우는 일도 아픔인 것을------
그냥 지나치면 보이지 않는다.
가만히 시간을 내어 들여다 보니
꽃이, 그리고 아픔도 보인다.
텃밭 주위엔 부추꽃이 피었다.
작은 꽃이 나무 그늘이라 어두운데도
햐얗게 빛나고 있엇다.
차가 있어서 밖에 나돌아나닐 수 있었다면
이렇게 작고 잔잔한
행복감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집에서 살 때면
가끔씩 이 부추를 뜯어다
부침을 해먹곤 했었다.
참 오랜 만이다.
이 꽃과 다시 만난 것도-----
바쁘게 산다는 것은
끊임 없이 무언가 소중한 것들을
흘리며 살고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닐런지 모르겠다.
부추꽃이 어둠을 배경으로 피어난
별꽃 같았다.
우리 집 현관 앞.
그렇게 들락날락하면서도
눈만 스치었지
이렇게 가만히 들여다 보질 못했다.
몽글몽글 빨갛게 물이 들어가는 이 녀석은
아마도 사춘기에 막 들어선 것 같았다.
저 빨간 수줍음은 내 눈길 때문인가,
아니면 햇살에 익어서인가.
살아가면서
사물이 되었건, 사람이 되었건
때로는 모든 걸 멈추고
가만히 들여가 보는 일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들여다 보는 일은
사랑한다는 말과 같다.
사랑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위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바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 글이나 사진도
누군가가 가만히 들여다 보았으면 좋겠다.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들여다 보았으면 좋겠다.
잠깐이지만
내 주위의 것들과 만나서 눈길을 주었을 뿐인데
갑자기 나도 사랑 많은 존재가 된 것 같았다.
누군가가 나를 가만히 들여다 보아준다면
나도 내 안의 사랑과 평화를
가만히 흘려 보내 줄 수 있는 그런 존재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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