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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일기

Piermont의 아침

 

내게도 기대감이라는 것이 아직도 남아 있는 걸까.

 

집에 들어와 자는 주말이면

늘 뒤척이다 잠이 깬다.

새벽 네시 반.

기대감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나이들어가면서 잠이 줄어든 것일까.

 

축구를 하러 가야겠기에 먼 곳은 아예 꿈도 못 꾸고

Piermont로 향했다.

 

막 해가 떠오르려 하고 있다.

부두를 뜻하는 Pier와 산을 뜻하는 Mont가 합쳐진

이 곳의 지명으로 미루어 짐작해도

강과 산이 맞닿아 있는 곳이다.

강에서 가까운 곳에는 작은 집들과

상점들로 마을이 이루어져 있고

산 쪽으로 오를수록 큰 집들이 산 기슭에 넓직하게 자릴 잡고 있다.

허드슨 강이 잘 보이는 곳이다.

오늘은 이 마을 나들이를 나섰다. 

큰 집 작은 집을 가릴 것 없이

집집마다 꽃을 가꾸는 이 동네 사람들은

분명 좋은 사람들일 거라는 고정관념을 난 갖고 있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을

아직까지 난 보질 못했다.

적어도 이런 나의 편견을 나는 사랑한다.

 

 

 

 

강 바로 옆에는  seafood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과

작은 집들이 있다.

해가 강을 건너고 있다.

이층 게단 사이로 보이는 해의 첨병.

늘 그러하듯 첨병을 앞 세워

아침이 오고 있다.

 

 

 

Boat Basin.

배를 탈 수 있게 된 선착장으로 향하는

저 끄트머리께

거위가 눈에 띄었다.

조심스레 접근했다.

 

 

 

살급살금 다가가 보니 거위 가족.

어린 새끼가 네 마리나 되는 거위 가족이

강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 새끼 거위의 털이 햇살에 빛이 난다.

아 반짝이는

솜털.

 

 

저 솜털이 내 가슴을 뛰게 한다.

살아있음, 그리고 살아갈 날이 아주 많이 남아 있음을 알려주는

징표 같은 것,

솜털.

내게도 저 솜철 같이 하얗게 빛난던 시간이

있었을까.

 

 

 

아직 낚싯배도 강으로 나가지 않고 늑장을 부리는

일요일 아침.

거위와 오리 몇이 부지런을 떨며 강으로 나간다.

무슨 희망이 있길래 저리 부지런을 떠는 것일까.

 

 

이 마을의 작은 꽃집 하나

강쪽으로 난 창문으로부터

햇살이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온다.

햇살에 소리가 있다면,

이럴 땐 어떤 소리가 들릴까.

 

 

아주 작은 꽃집이어서

저기 있는 꽃 다 팔아도 몇 푼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약삭빠른 생각이 들었다.

예쁘고 귀엽다는 느낌보다도

처량맞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내게 더 이상 솜털이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참 사진 찍기 힘이 든다.

강 건너에서 달려드는 햇살은 너무 눈부시고

이쪽은 너무 어둡고-----

너무 강한 명암의 대비 때문에 조화로운 사진을 찍기 어렵다.

렌즈에 지나치게 많은 빛이 들어와

사진이뿌옇게 보인다.

.

산뜻한 아침이라도

빛을 마주보며 사진을 찍는 일은 참 무모하다.

 

 

가게 안이 좁다보니

이렇게 꽃들은 옆마당에서 한데잠을 잔다.

이슬엔 간밤에 내려 앉은 별빛이

배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침 햇살에

그리도 빛나는 것일 게다.

 

 

 

 

 

 

 

이 꽃나무에도 솜털이 있는 것 같다.

 

 

그냥 땅에서 올라온 담쟁이에도 햇살이 묻었다.

햇빛이 무슨 색일까.

초록을 노란 색으로 바꾸는 색소라도 있는 것 같다.

 

 

꽃집 벽에도

강 건너온 아침 햇살이

사선으로 내려오고 있다.

아무래도 아침의 햇살은 정오의 그것과

속도에서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정오의 햇살은

직각으로 내려와 꽂히는 것 같다.

그 속도감.

그래서  사선으로 다가오는

아침 햇살이 정오의 햇살보다는

아무래도 더 다정하다.

 

 

해를 등지고 길 건너 편을 보니

어느 집 창문 아래 장미인지 찔레인지

소담스러게 피어 있다.

 잠에서 깨어나

제일 먼저 저 집 사람이 할 일은

아마도 창문을 여는 일일 것이다.

햇살과 함께 값 없이 밀려드는

장미향을 한껏 맞아들이는 일일 것이다.

 

 

 

 

 

 

이 작은 식당은 벽화가 그럴싸하다.

창문이며, 페인트가 벗겨져 드러난 벽돌하며

늘 웃음짓게 만든다.

그런데 식당 앞에 세워둔 스쿠터 두 대 중 한 대가 없어졌다.

어디로 갔을까?

 

 

빛에도 향기가 있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집으로 오르는 계단을 지난 햇살은 

장미향이 그윽하게 묻어있을  것 같다.

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저 집도 실은

빨간 장미향이 듬뿍 배어 있으리라.

향기가 나는 집.

장미를 심은 사람들 마음엔

언제고 장미 향기가 나리라.

 

 

 

 

 

물가에 있는 어는 집 담장 너머로

Tapan Zee 다리가 보인다.

나무 틈을 뚫고 한 줄기 빛이

땅에 착륙했다.

물과 빛.

틈이 있으면 어디고 침투한다.

 

아직 내 마음에도 틈이 있을까

너무 굳게 닫혀 있는 건 아닌지.

누군가가,

무엇인가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라는 것이

있기는 있는 걸까.

 

그런 것들이

무방비로 내 속으로 들어올 때도 있었다,

 

내 솜털같은 시간들은

다 어디로 흩어진 것일까

 

 

 

 

 

 

 

 

 

 

 

담장 너머의 세상이 그렇게도 궁금할까.

틈새로 고개를 내민 녀석도 있고,

뒷굼치를 높이 들고

고개를 쑤욱 내민 녀석들도 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녀석들.

 

여학교 선생 시절

아이들 까르르하는 소리가

여기서 들리네.

 

 

작은 집이다.

그런데 집에 들어가려면

장미의 아치를 통과해야 한다.

파리에 가서 본 개선문보다

훨씬 시적이다.

빛과 향이 있는 개선문.

이 집 사람들은 늘 기쁘게 집으로 들어갈 것이다.

바닥에 몸을 누인 장미를 밟으며-------

기쁨으로 통과하는 진정한 개선문.

위풍당당하게 통과하는 개선문보다

미소 지으며 지나가는 저 장미 개선문.

 

장미 아치 때문에 

작아도

큰 집.

 

아, 난 누군가를 위해 저렇게 공중에 몸을 누인

아치였던 적이 있었을까---

 

 

 

 

 

 

 

 

 

 

햇살이 담쟁이 덩쿨따라

돌담을 기어오르는 것 같다.

빛이 긴다

빛이 돌 위를

기 어 간 다

빛의 속도라고 하지만

빛은 담쟁이 잎이 기어가는 속도를 넘지 못한다 .

 

 

집 입구가

한 쪽은 대숲이다.

대숲에 이는 바람소리

바람 부는 날이면 차는 길에 세워두고

천천히 걸어서

집에 가야 하리.

 

 

이슬에 흠뻑 젖은 나리꽃 (?)

한 밤 동안 살며시 내려왔다가

아침 햇살에  사라지는 이슬.

햇살이 비치면

이슬은 숨 막히게 아름답다.

 

그리고 이내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아름답다'라는 말은

'슬프다'라는 말과도 같다,

적어도 나에겐,

 

.

 

 

 

다시 마을로 내려오니

다리가 물 속에 잠겼다.

다리가 물 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론 물 속에

있기도 하다.

물 속에 있는 다리를 건너면

 물 위가 아니라 물 속으로

물을 건너는 셈이다.

 

 

 

 

 

강으로 향하는 물길과 갈대밭이 시작되는 곳,

다리 옆에 작은 놀이터가 있다.

아이들이 놀다간 자리는

늘 그렇다.

see-saw가 한 방향으로 놓여 있지 않다.

한 쪽으로 가지런히-그건 솜털이 없는 어른들의 마음이다.

가지런히 정돈하기 시작하면서

마음의 솜털도 하나씩 사라져 가는 것이다.

어릴 때 무슨 뜻인 줄도 모르고 부르던 시소.

See-Saw.

솜털이 있는 사람 눈에는 보인다(See)

저 정리되지 않은 것의 아름다움과 자유로움이.

 

날이 밝고 해가 더 높이 솟아오르면

아이들이 이 곳으로 놀러나올 것이다.

 

솜털 보송보송한

아이들이-----

 

 

 

집 앞의 잡동사니.

벤치,

작은 간이 의자.

마차 바퀴.

그냥 두어도 아무도 집어가지 않는 물건들이다.

내가 기억하기로도 십 년도 넘었을 것이다.

그래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영어로 Sentimental Value라고 하는 것 때문일 것이다.

가령, 저 의자에 저 집 아이가 앉았던 기억이 있다면----

그래서 저 값어치 없어 보이는 고물을 내다 버린다면

아이의 기억마저 사라질 것 같기 때문에

저렇게 햇빛 잘드는 집 앞에 모셔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기억이나 추억만큼 소중한 것이 또 있을런지.

영화 같은 걸 보다가도

주인공이 죽어가면서

기억하는 것, r추억하는 사람들이

영상으로 흐른다.

죽으면서도 꼭 끼고 놓지 않는 것이 기억이 아닐런지.

 

 

 

 

 

 

 

 

 

 

 

 

 

 

 

 

 

 

 

 

 

 

 

 

 

 

 

 

물 옆의 집에 핀 꽃.

무슨 이름을 가진 꽃인지 궁금하다.

아침 햇살이 비치니

아직은 어둔 뜰을 밝히는

작은 등불 같이 보인다.

 

그리고 줄기엔 작은 솜털이 돋았다.

 

등불도 이슬 같든 존재다.

해가 완전히 나면

사라질 존재이기에.

 

솜털,

 이슬.

등불

이런 말들이 슬퍼지는

찬란한 유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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