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미국에 온 지 30여년이 다 되어가는데
요즘 날씨는 참 유난스럽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네요.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하루 걸러 내리고,
화씨 90도가 넘는 날들이 계속되니
우리 모두의 삶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걱정스럽기까지 합니다.
지난 주 금요일이었을 겁니다.
종일 멀쩡하던 날씨가 퇴근을 하려고 차에 오르니
하늘이 비를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금요일에 비까지 내리면 그야말로 날씨와 날짜가 환상적인 콤비를 이루며
뉴욕의 교통을 마비시킵니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어서
막히지 않던 윌리암스버그 브리지 초입부터 밀리기 시작하더니
다리가 후둘후둘 떨리는 걸 느낄 정도로 다리 위에 긴 시간을 멈추어 있어야 했습니다.
평소 빠른 속도로 다리를 지나다닐 땐 몰랐는데
다리 중간에 서 있어보니
다리도 무척 흔들린다는 걸 알 구 있었습니다.
겨우 다리를 건너서
제가 다니는 맨하탄 동쪽의 FDR로 방향을 잡았는데 무슨 까닭인지
Ramp를 아예 막아놓아서 들어갈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맨하탄을 가로질러 서쪽의 Henry Hudson P’Way를 타기 위해
East Village를 지나는데 이곳 역시 호락호락하질 않았습니다.
겨우 서쪽의 끝에 이르니 비가 멎고 구름 사이로 해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곳도 교통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짜증은 쌓일대로 쌓여서 왜 이러고 살아야 하는지,
이런 고생을 자식들은 알기나 하는걸까- 하는 인생무상의 분위기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허드슨 강 건너 뉴저지 쪽의 하늘을 보니,
지는 해의 빛깔이 너무도 고왔습니다.
아직 가시지 않은 구름 사이로 장엄한 저녁 노을이
흔치 않은 멋진 광경을 만들어내는 것이었습니다.
멋진 경치 때문에
출발하면서부터 쌓였던 짜증이 슬그머니 사라져버렸습니다.
가다가서고, 또 가다가 서곤 하는 한없이 느린 트래픽 덕택에
비록 차 안이긴 했지만 저녁 햇살의 고운 빛도
카메라 렌즈 안에 모아들일 수도 있었습니다.
비 덕분에 평소에 다니지 않던 서쪽 길로 오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눈이 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황홀했던 풍광은 제 기억 속에, 그리고 사진으로 남아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원치 않아도 속도를 늦추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먼 길을 돌아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도
우리가 생각하지도, 기대하지도 못했던 행운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삶이 고통스러울 수도 행복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날 집에 가는 데 꼬박 세 시간이나 걸렸지만
피곤하고 지루한 느낌보다는 상큼하고 행복한 느낌만 남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삶의 힘든 고비마다 비밀스러운 보물을 숨겨 놓으신듯합니다.
바삐 옮기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어 서서
숨을 고르며 찬찬히 바라보고
그것을 발견한 사람에게는
은밀한 기쁨이 될 수 있도록 말이지요. (뉴욕 가톨릭 방송원고 중에서)
날이 흐려서 잘 안 보이지만 온통 유리로 된 건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첼시 부근인 듯합니다.
그런데 어디 보자. 범상치 않은 차입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람보기니, 그 비싼 차입니다.
비싸면 뭐 별 수 있습니까? 이렇게 꽉 막힌 상황에서. 람보기니나 내 차 현대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강 건너 뉴저지 쪽으로 넘어가는 노을이 황홀합니다.
도날드 트럼프 건물의 유리창에 노을이 비칩니다.
우리창은 액자가 되어 아름다운 노을 경치를 담았습니다
가다가 서고 가다가 서는, 아주 지루하고 고단한
퇴근길이었지만
일몰의 경치를 바라보는라 그런 것 다 잊을 수 있었습니다.
자연엔 치유의 능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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