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밑이 거뭇거뭇해질 때까지 살던 동네엔
집문을 열고 나가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눈길이 더 가지 못하고 멈추는 곳에
빨간 벽돌로 된 이층집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우리 동네에서 제일 부자였고
달처럼 하얀 세 자매가 부모님과 살았습니다.
막내는 제 여동생과 친구여서
가끔 집에 놀러오곤 했는데 한결같이
그 아이에게 '큰 언니 집에 있니?" 하고 물었습니다.
혹시라도 집에 없다는 대답을 들으면
종일 기운도 없고 가슴속이 허전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콩당거리고
얼굴도 서과처럼 달아오릅니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왜 그런지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그 아이의 큰 언니가 대학에 가서야
가끔 이층 베란다에 모습을 나타내곤 했는데
눈이 시렸습니다.
베란다에서 테니스 스윙 연습을 할라치면
내 마음도 같이 그렇게 흔들렸습니다.
차라리 내가 테니스 공으로 태어났으면 하고 바란 적도 있었습니다.
학교를 가려고 문을 나서면
오른쪽으로 가야 하는데 고개는 자꾸만 왼쪽으로 향합니다.
발걸음도 굼벵이 걸음입니다.
까까머리 중학생이었던 나에게 그녀는
그야말로 '가까이 하기앤 너무 먼 당신'일 뿐이었습니다.
집이 이사하는 관계로 그녀는 자연스레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사람 마음 참 믿을 게 못되네요.
언젠가
비 오는 날 창가에 앉았더니
아, 그녀가 하얀 얼굴로 거기 있습니다
테니스 라켓을 경쾌하게 흔들던 그 모습으로------
때론 비 오는 창가에 가까이 가 볼 일입니다.
지금도 가슴 뛰는 어린 시절의
은밀한 감격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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