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소에서 생긴 일 -횡재
세탁소 생활이 30 년이 넘다 보니
남다른 재주가 하나 늘었다.
손님들이 맡긴 옷의 주머니를
소매치기의 실력 못지않게
빠르고 정확하게 뒤지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세탁소 카운터에서 주머니를 뒤지는 일은
상당히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주머니가 하나도 없거나
아니면 하나,
그것도 주머니 안의 내용물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셔츠를 만나면 그리 반가울 수가 없을 정도이다.
요즘같이 날이 추워지는 계절이 오면
거의 열 개에 가까운 주머니가 있는
코트의 주머니를 뒤지는 일은 그야말로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꼬박꼬박 심혈을 기울여 그 일을 하는 것은
손님들의 주머니 안에 남겨진
볼펜이나 립스틱 같은 요물(?) 때문이다.
세탁소에서 일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세탁 과정이 끝나고 세탁기의 문을 열었을 때
볼펜 잉크가 묻은 옷을 발견하고
심장이 쪼그라든 경험을 누구나 했을 것이다.
옷에 묻은 잉크를 빼느라 반나절에서
하루를 땀을 흘려야 하는 그 고통을 아는 사람은 안다.
그래서 손님이 맡긴 옷의 주머니를 검사하는 일은
옷을 빠는 일보다 더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
며칠 전 한 손님이 오리털 코트를 들고 왔다.
그런데 안에 넷,
바깥쪽에 넷,
팔에 둘,
모두 합쳐서 열 개의 주머니가 있는 옷이었다.
짜증이 났지만
아름답지 못할 수도 있는 뒤끝 예방을 위해서
정성껏 주머니를 뒤졌다.
그런데 윗 팔에 있는
작은 볼펜 주머니의 지퍼를 열었는데
손가락에 입질이 오는 것이 아닌가.
꺼내 보았더니 5 달러짜리 지폐였다.
어제 그 손님이 옷을 찾으러 왔길래
주머니 안에서 발견된
5 달러를 돌려주었다.
그 순간 손님의 입가에 밝은 미소가 피어났다.
그리고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팁입니다 받으세요."
그 손님은 그 돈을 도로 내게 건네며
아무 말도 없이 가게를 떠났다.
손님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발견한 것이 어디 이 번뿐이었을까.
제일 액수가 컸던 돈의 액수는 현찰로 거의 천 달러에 이르렀다.
그 손님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찾아가라고 했더니
빛의 속도로 와서는
그 돈을 받아 들고 아무 인사도 없이
바쁜 걸음으로 세탁소를 빠져나갔다.
무척 요긴한 돈이었는데
인사를 할 여유가 없었던 모양이다.
어떤 손님은 꽤 많은 돈을 찾아서 돌려주었음에도
주머니에서 더 나온 건 없었냐고 다그치기도 한다.
사람들의 성격과 마음가짐에 따라
이런 경우의 반응이 다 다르다.
그런데 어제 옷을 찾아간 손님은
자기 돈 5 달러를 되찾은 것보다
정직한 사람 하나를 발견한 것 같은 기쁨이 더 컸던 모양이다.
그 손님은 내가 찾아준 5 달러 때문에 행복했고
나는 마음을 알아준 손님 덕에 하루 종일 기뻤다.
나는 그 손님이 준 5 달러에
내 돈 5 달러를 합친 10 달러를
빳빳한 새 돈으로 준비해서 지갑 속에 넣어 두었다.
이 10 달러 짜리 지폐는
누군가에게 뜻밖의 기쁨이 될 수 있는 곳에 쓰이게 될 것이다.
그 손님의 5 달러가 돌고 돌아
5 천 달러가 되고 5 만 달러가 되어
누군가에게 커다란 기쁨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미국의 한 기상학자의 이론 중에 '나비효과'라는 게 있다.
브라질에서의 한 나비의 날갯짓이 텍사스에서 돌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사소한 사건 하나가 나중에 커다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때
자주 인용이 되는 이론이다.
바깥엔 찬 바람이 부는데
빳빳한 10 달러가 들어있는
내 지갑, 그리고 내 주머니에서는
왠지 따스한 봄바람이 솔솔 불어 나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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