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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그대, 그리고 나

그대, 그리고 나

 

 

3 주 전에 아내가 감을 사다가

베란다로 나가는 문 위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았다.

 

"가을의 정취가 느껴지지 않아?"

 

도대체 감을 줄에 꿰어 매달아 놓은 연유가

궁금해서 물어본 내게 아내가 내어 놓은 답이었다.

 

"하나 먹어요 돼?"

 

"안 돼요!!"

 

감은 먹는 것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내가

실내 장식용으로 치장한 아내에게 

감 하나 따서 먹어도 되냐고 청했으나

단답형의 대답만이 돌아왔을 뿐이었다.

 

아내의 한 마디는

삼심제인 대법원의 최종 선고와 같은 효력을 갖는다.

적어도 우리 집에서는

아내가 입법 사법 행정의 3권을 장악하고 있다.

 

그래서 아내의 결정에 

마음속으로만 구시렁거리며 입을 닫을 도리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그림의 떡도 아니고 

눈앞에 번연히 실제의 감이 있는데

눈으로 보기만 하라고?

 

감을 보기만 하는 것은

본래 맛나게 창조된 감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베란다에 들락날락하면서

우연을 가장해서 몇 번을 아래쪽에 매달린 감을

머리로 받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드디어 감 한 개가 물러서 터질 지경에 이르렀다.

아내에게 고했더니 그 감을 따서

내게 주었다.

 

아, 달디단 감의 그 맛이란!!!!

 

그런데 그 주의 일요일 오후에 손님 몇 분이

우리 집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아내는 점심 식사에 곁들일

겉절이를 만들며 나에게 맛을 보라고 하였다.

 

"당신이 만드는 것이니 먹기도 전에 너무 맛있어요."

그런데 실제로도 맛이 좋았다.

 

아내는 나의 말에 살짝 감격을 한 것 같았다.

 

다음날 아내는 감 한 상자를 사 왔다.

정작 본인은 먹지도 않으며

나에게 열심히 감을 깎아주었다.

 

한국의 어느 대통령 후보가

식용 개와 반려견이 함께 존재할 수 있다고 했다는데

우리 집이야말로

식용으로 하는 감과

쳐다보기만 하는 관상용 감이

따로따로 그리고 서로서로 존재하는 곳이다.

 

나는 오늘도 매달린 감들을 보며

아내가 들으라고 작은 소리로 읊조린다.

 

아, 감을 매달아 놓으니 가을 정취 지대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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