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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일기

안개. 출근길

안개가 짙다.

 

구름이 끼거나 비가 와서 일출을 보지 못한 적은 있으나

창 밖의 불빛마저 지워버린

아침 풍경은 어제가 이사 온 후로 처음이었다.

 

전철을 타고 출근하는 것도 

이젠 일상이 되었다.

토근 길이 조금 빡빡해서

누군가가 내 대신 길을 인도하는 수동적인 퇴근이

맘도 몸도 수월한 나이가 된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운이 좋으면 운전해서 퇴근하는 시간과

전철로 집에 오는 시간의 길이가 

비슷할 때도 있으니  

인정이라는 걸 찾기 힘든 뉴욕 시내의 퇴근길에

전철은 몸과 정신의 휴식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사진은 시간의 역순)

 

대개 전철의 승객들은 무표정이다.

감정이 없이 창조된 생물이 전철에 오르고 내리는

기계적인 동작을 하는 것 같다.

불이 들어오지 않는 형광등

우리 삶도 그렇다.

살아가고 나이를 먹으면서 정신의 불도 하나 둘 꺼져간다.

가끔씩 지하에 있는 전철역에서

비둘기를 만날 때가 있다.

들어오긴 했으나 나가는 길을 잃어버린 

통발 속의 물고기 같은 신세.

 

 

전철을 기다리는 사람들.

전철역에 쌓인 기다림의 시간은 그 무게가 얼마나 될까?

 

스쿠터를 타고 가는 아이.

전철을 기다리는 사람을 구경하는 비둘기.

 

브로드웨이 junction에는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된 유리창이 있다.

이미 많은 것이 맹유리로 교체되었고

아직 깨진 유리창이 그대로 방치된 것도 있다.

이 곳의 삶의 모습이다.

 

에스칼레이터와 계단.

계단의 경사가 가파르다.

열여섯 개의 계단 네 개를 나는 빠른 속도로 걸어 오른다.

 

내 코에서 나오는 숨이 마스크에 가로막혀 제대로 배출이 되지 않는다.

몇 분 동안 가쁜 숨이 계속된다.

 

사람들은 계단 말고 에스칼레이터를 애용한다.

 

안개를 뚫고 일터로 가는 남자.

아침인데도 어깨가 처져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길이 더 가벼울 것 같은----

 

전철역으로 가는 도중 사거리에 있는 커다란 델리 가게는

아침부터 바쁘다.

세 명이 바쁘게 그릴 앞에서 일을 한다.

 

많은 가게가 비어 있고

이 봄 새로 무엇인가 시작하려고 준비 중이다.

 

정말 봄이 올까?

 

밤 새 비에 젖은 자전거

 

 

식당 Claudette

문이 닫혔음에도

네온사인은 아주 당당하게

'Open'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문을 닫은 사람이 깜빡했을 것이다.

미소를 지으며 지나간다.

 

그 사인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이 보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로비의 유리에 내 모습이 보인다.

출근하는 내 표정은 어떤 모습일까?

 

모든 것이 지워진 바깥 풍경.

가까운 곳의 불빛 몇만 반짝인다.

 그 많던 불빛은 다 어디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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