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10 Km 완전군장 구보를 한 뒤로
어제 처음으로 5 Km를 쉬지 않고 뛰었다.
마지막에는 10 Km를 뛰지 않고 5 Km 만 뛰었다.
제대 말년에 군기가 빠져서
도저히 10 Km를 다 뛰지 못할 것 같았다.
다른 소대장과 모의를 해서 5 Km 씩 나누어 뛰었다.
그 친구는 버스를 타고 반환점에 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인솔한 중대원들과 함께 부대로 복귀하고
나는 반환점에서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그러니까 내가 군복을 벗은 것이 1982 년도이니
거의 40 년 만에 5 Km를 쉬지 않고 달린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아무런 소득도 없이
힘만 드는 달리기를 할 생각이 1도 없었다.
그런데 아이들 몇이 세로 이사한 동네에서 열리는
5Km 달리기 대회에 참가 신청을 했고
아마도 아내가 동조해서 내 이름도 참가자 명단에 올렸다.
토요일 몇 시간을 일하는 시간에서 덜어내야 하니
마음의 부담이 되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잘 보지도 못하는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기대감 하나로
달리기로 마음을 굳혔다.
날도 맑고 기온도 달리기에는 아주 적합했다.
오전의 바다는 신비롭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우리 아파트가 있는 116가의 한 Irish Pub에 가서
신고를 했다.
작은 플라스틱 백 하나를 받았는데
집에 와서 보니 전자 칩이 달린 번호표와 함께
아이리쉬 빵집에서 만든 빵과 쿠키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번호표를 달고 달릴 준비를 하다 보니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지영이와 사위 Brian이
새로 입양한 강아지 클레멘타인을 데리고 나타났다.
지영이는 Prospect Park에 있는 자기 집에서부터
긴 거리를 뛰어왔다고 했다.
(둘째는 올해 베를린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
사위 Brian은 가끔 자전거를 타고
이 곳에 오는데 올 때면 Claudette라는 식당에서
라테와 바나나 브레드를 사 먹는다는 말을 나에게 했다.
이 동네가 낯설지 않다는 말을 내게 한 것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참가하는 달리기 대회의
다른 참가자들은
평소에 나름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러닝슈즈며 몸에 달라붙는 레깅스 같은 것들을 입은 것으로 보아
평소에도 자주 달리기를 하는 고수들로 판단되었다.
나는 처음에 걷기 반 뛰기 반으로 대회에 참석할 생각이었다.
카키 바지에 작은 카메라도 목에 걸었다.
아들이 카메라들 목에 걸고 뛸 거냐고 묻는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출발지점이 116 가이니 바로 집에 올라가서
축구할 때 입는 운동복 바지로 갈아입고
카메라도 두고 출발점으로 향했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동네 사람인 것 같았다.
동네 주민의 많은 부분을 아이리쉬 후예들이 차지하고 있는 까닭으로
St. Patrick's Day 퍼레이드를 연상하게 하는
세 잎 클로버가 그려진 녹색 티셔츠 차림의 참가자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아들 부부와 둘째 딸은 처음부터
천천히 뛰기 시작해서 끝까지 보조를 맞추어 결승점까지 들어왔다.
처음엔 나도 아무 생각 없이 같이 뛰다가
좀 답답한 기분이 들어서 약간 속도를 내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고도 할 수 있는
5Km를 쉬지 않고 달린다는 일이
달리기 무경험자인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일종의 도전이었다.
중간중간 "내가 뭔 영광을 보려고 이렇게
애를 쓰고 달리고 있나?"라는 회의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중간에 멈추고 싶은 유혹도 생겼다.
-내가 포기한다고 해서
누가 뭐랄 사람도 없는데 왜 이렇게 기를 쓰고 달리는 것일까?-
그때 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끝까지 뛰고 나면
아이들은 나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을까?
가령 "우리 아빠는 아직도 건강하다."와 같은---
그래서 내가 끝까지 달리면 아이들에게
밝은 인상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 달리는 일이 의미를 띠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빈 가지에 꽃이 피는 것 같다고 할까,
달리는 일에서 조금의 희열을 느끼 수 있었다.
5Km 완주.
기록은 29 분 05 초.
기록은 중요하지 않았다.
동기가 있으니 달리는 일에 의미가 생겼다는 점,
그리고 그런 것이 나의 사랑법이라는 걸 찾아낼 수 있었다.
우리 식구들 모두가 결승점에 들어온 뒤
우리 집에서 아내가 준비한 브런치를 함께 했다.
나는 커피를 내려 아이들에게 대접을 했다.
그런데 Brian은 블랙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우유와 설탕이 야무지게 넣고 마신다. (우리 집에는 설탕도 우유도 없다.)
그래서 Claudette에 가서 Brian과 아내를 위해
라테 두 잔을 주문했다.
(내가 평소에 하지 않던 짓을 부러 한 것이다.)
그리고 아침에 Brian이 했던 말을 기억하고
바나나 브레드도 하나 주문해서 집으로 왔다.
바나나 브레드를 받는 Brian의 표정에
작은 놀라움이 번졌다.
이십몇 억짜리 아파트가 아니고
라테 한 잔, 바나나 브레드 한 조각으로도
사랑과 관심을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아이들 어릴 적 바쁘다는 핑계로
큰 밑천이 들지 않는 사랑을 잘 주지 못했는데
이제부터라도 한 줌씩이라도 사랑을 주는 연습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그런 사랑을 주고 표현하는 달리기라면
5 Km가 아니라 마라톤이라도 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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