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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오늘 세탁소에서 생긴 일

하나.

 

웨인은 참 듬직한 친구다.

덩치도 덩치이지만 

듬직한 말투며 신뢰를 갖게 하는 매력이 있다.

옷을 맡길 때와 찾아갈 때 아무 군소리를 하지 않는다.

세탁비는 늘 선불이고

티켓도 나에게 맡겨 놓는다.

 

그는 그냥 신뢰를 갖고 모든 걸

나에게 맡기는 스타일이어서

사실 나는 더 긴장을 하고 

모든 세탁 공정이 끝난 옷도 다시 한번 보며

그의 신뢰에 얼룩을 남기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쓴다.

 

그는 꽤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세탁소의 단골인데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시작되며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오늘 아침 거의 1 년 만에 그가 얼굴을 드러냈다.

 

그의 손에는 크림 색의 여자 정장이 한 벌 들려져 있었다.

 

그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이 옷 오늘 세탁해줄 수 있어요?"

 

마음먹으면 못 할 것도 없지만

옷의 상태를 보니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 옷에는 온갖 종류의 얼룩이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얼룩을 빼는 데만 30 여 분 넘게 걸릴 것 같아서

나는 미안한 표정으로 어려울 것 같다고 대답을 했다.

 

피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은 쓴 잔 같은 

일거리였으나 오랜만에 온 그에게

싫은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뭐 특별한 일이 있냐고 그에게 물었다.

갑자기 그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아내가 세상을 떠났어요.

아주 오랫동안 앓다가."

 

그 옷은 아내의 수의로 쓸 예정이라고 했다.

 

그의 아내는 아프기 전에

우리 세탁소 위에 있는 전철역 부스에서 일을 했는데

그 때문에 우리 세탁소와 인연을 맺었다.

 

나는 알았다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옷을 집어 들었다.

 

웨인은 내게 부탁을 하면 무엇이든

들어줄 것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아내보다도 

아내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아야 할 

웨인의 마음을 기억하며

정말 마음과 성을 대해서

얼룩을 빼고 세탁을 해서

다림질까지 마쳤다.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하게 세탁된 옷을 바라보며

웨인도 마지막 아내의 모습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기억하길 소망했다.

 

입만이 아닌

내 손으로 하는 노동을 통해서

작은 기도를 한 것 같다.

 

마음 아프면서도 한편 가슴이 뿌듯한 오후.

 

 

 

 

둘.

 

그녀는 늘 웃는다.

 

요즈음은 마스크를 써서 입이 가려지기는 해도

그녀의 눈을 보면

마스크 뒤에 숨어 있는

그녀의 미소가 보인다.

 

Fasano

 

우리 딸들과 나이가 비슷해서

마음속으로 딸처럼 생각하는 아가씨인데

작년에 콜로비아 대학에서 심리학 공부를 시작했다.

직장 생활과 공부를 같이 하느라 힘이 들 텐데

웃음을 잃은 적이 없다, 적어도 내 앞에서는.

 

그녀는 내가 빨리 백신을 맞고 아이들과 손주를

자유롭게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 백신 맞는 것까지 간섭하며 

여러 가지 정보를 전달하는 오지랖을 떨기도 한다.

 

오늘은 그녀가 치마를 세탁해 달라고 와서는

수다를 떨다가 깜빡하고

등을 돌려 나가는 순간.

"참, 깜빡했는데 치마에 단이 터졌는데 수선도 해주세요."

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평소 같으면 짜증이 날 법도 했으나

마음을 고쳐 먹었다.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수는 없었다.

 

"O.K, It's on the house."

 

그녀의 마스크 뒤에 숨어 있는 미소에 홀려서인지

무료로 수선을 해주겠다고

말이 헛나온 것이다.

 

짜증 대신 선심을 쓴 셈이었다.

 

이미 나온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는 일이고 해서

그냥 한 마디 덧붙였다.

 

"Because of beauty privilege"(미녀의 특권)

 

그녀의 웃음 소리가

마스크를 뚫고 나왔다.

 

오늘은 오후 내내 햇살이 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