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가는 니스(Nice)의 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작년 6 월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첫 번 째 목적지를 프랑스의 니스로 택한 것은
아무래도 니스의 근처에 있는 생폴 드 방스에 가기 위한
베이스캠프로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어디서 보고 들었던지 생폴 드 방스의 아름다움에 반한
아내의 여행 밑그림에 그곳이 들어 있었고
니스에서 멀지 않은 모나코도 우발적으로 다녀오게 되었다.
내가 니스에 대해서 알고 있던 것은
대학 다닐 때 대학가요제에서 우승했던
'모모'라는 노래의 가사에 그 지명이 나오는데,
달랑 그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우리 방문 3 년 전에 테러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인데
귓가로 흘러가는 뉴스 덕으로 대충 알고 있을 뿐이다.
결국 니스를 방문하기 전이나
다녀온 후나
니스에 대해 아는 지식의 양에는 변함이 없다.
나같이 무심하고 무성의한 방문자에게도
니스의 문은 열려 있었고
기차역에서 내려 아래 쪽으로 길을 걷다 보면
푸른 바다로 이어진다.
길 이름은 베르디, 모짜르트, 로시니 같은 작곡가들의 이름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바다로 가는 길에 그들이 만든
음악 소리가 들리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유흥준이 말한 '아는 것 만큼 보인다'라는 명제는
여행하면서 어느 정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의 부정적인 면을 더 신봉한다.
미리 알고 공부한 것만 보는 부작용이 그 말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아는 것만 보려고 하고, 또 아는 것만 보기 때문이다.
결국 나도 그 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모르는 게 약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모모라는 노래 가사에
'날아가는 니스의 새들을 꿈꾸는'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그 가사에 나는 갇혀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니스에 가서 주로 하늘을 보고 다녔다.
노랫말이 사실이라면
니스의 하늘은 새들이 점령하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니스의 새들은 땅에도 없었고
하늘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많아야 할 새떼들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니스에 머물면서 내내 이 생각만 하다 왔는데
결론에 이를 수 없었고
내 머리속에는 아직도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다.
내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보통 사람들에게 해외여행은 '미션 임파서블'의 범주에 들었다.
그래서 니스에 가 본 적이 없는 사람이
그 노랫말을 쓴 것이 아닌가 하고 나름대로 추리를 해보지만
결론을 낼 수는 없었다.
니스의 바다는 산뜻하고 푸르렀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바닷가에 식당과 카페가 있는데
테이블과 파라솔이 바다와 어우러져 풍경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 식당과 카페의 이름은 바다를 낀 도시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기억나는 것 하나가 '마이애미'였다.
식당과 식당 사이에는 사람들이 듬성듬성 무리를 지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아주 보편적이어서
니스에서 바다는 하나의 풍경이고 배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바닷가 길 옆의 상점들과
넓은 보드워크는 사람들로 꼭꼭 메워져서
붐비는 해수욕장이 해변이 아니라 보드워크로 옮겨진 것 같았다.
그런데 니스의 해변은
모래가 아니라 엄지와 중지를 서로 맞닿게 해서 만든
동그라미 크기의 조약돌로 채워져 있었다.
신을 벗고는 몇 발자국 떼기가 힘들 정도로 발에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니 해변을 거닌다는 상투적인 낭만주의자 행세는
애초에 가능하지가 않은 것이다.
다만 파도가 밀려왔다 떠나갈 때
물결에 휩쓸린 자갈이 돌돌돌 구르는 소리가 명랑했다.
그래서 내가 니스를 다녀온 뒤에
니스는 자갈 구르는 소리로 기억된다.
그런데 바닷가에서 아내가
날아가는 니스의 새들이 없는 없는 까닭에 대한
아주 신박한 해석을 내어 놓았다.
모래가 있어야 게나, 조개 같은 생물이 살 수 있는데
조약돌로 해변이 이루어져 있으니 그들이 서식할 수 없고
먹잇감을 구할 수 없으니 당연히 새들이 없는 거라고.
나는 아내의 해석을 듣고
신라의 선덕여왕을 떠올렸다.
중국에서 온 모란 그림에 나비가 없는 것을 보고(여러 가지 반론이나 다른 이론이 있기는 하지만)
모란에는 향기가 없다는 것을 유추한 선덕여왕과 같은
지혜로운 여인이 내 아내인 것을 새샘 깨닫게 된 것이다.
결국 니스에 머무는 동안
'날아가는 니스의 새들'은 만나지 못했다.
내가 본 것은 갈매기 한 두 마리가 전부였다.
그것도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가로등 꼭대기에 앉아 있는-----
결국 니스는
날아가는 새들이 아니라
파도와 함께 구르던 조약돌 소리,
그리고 바다처럼 푸른 아내의 지혜로 기억되는 곳이다.
날아가는 새들은 없어도
어쨋거나 '니스'는 언제나 나이스(NICE)다.
(프랑스어 지명 니스(NICE)와 영어의 nice는 철자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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