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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세탁소에서 생긴 일 - Keep the change

세탁소에서 생긴 일 - Keep the change

 

단골손님 하나가 옷을 찾으러 왔다.

별 말도 불평도 없이

조용히 옷을 맡기고,

때가 차면 또 말없이 옷을 찾아가는

말하자면 모범 손님이다.

더군다나 옷만 내려 놓고는 티켓을 챙기지도 않고

무조건 우리 세탁소를 100% 신뢰하는

'묻지 마' 손님이어서

나도 그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서

그의 옷에 특별히 신경을 쓰는 그런 관계가 우리 사이에 형성되어 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 날은 옷을 찾아가면서 돈을 지불하고는

말없는 그 사람이

"Keep the change."라고 다정스레 덧붙이는 것이 아닌가.

 

나는 돈을 세어 보았더니 26 달러였다.

영수증에는 26 달러 50 센트라고 뚜렷하게 인쇄가 되어 있었고

나도 그 금액을 따박따박 알려 주었는데

원 액수에서 50 센트가 모자란 26 달러를 카운터에 놓고서

잔돈은 가지라고 호기롭게 떠나가는 

그 손님을 말문을 닫고 망연히 바라볼 뿐 딴 도리가 없었다.

 

그 손님의 성품으로 볼 때

분명 세탁비의 액수를 잘 못 들었든지,

그도 아니면 잠시 무언가 혼동을 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50 센트,

아니 그보다 더 큰 정신적인 부채를 가지고 살아가면서도

남에게 베풀 때면 고작 50 센트의 팁을 주면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팔을 들고 흔들며 호기롭게 떠나는

주인공의 코스프레를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날 세탁소를 나서는 그 손님의 등에

내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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