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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발톱을 깎으며

발톱을 깎으며

 

 

오늘 아침 발톱을 깎았다.

 

손톱은 아주 길어지기 전에 깎는데

발톱은 그렇지 못하다.

손톱이 길면 당장 세탁소 일이며

일상생활을 이어가는데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 길어지기 전에 손톱을 깎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나 발톱은 제깍 제깍 깎아야 하는 절박함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다만 너무 길면 양말에 구멍이 생기는 경우가 있는 것 빼고는

경제 생활을 하는데 별 지장이 없는 것이 긴 발톱이다.

 

그런데 발톱을 깎다 보니

왼 쪽 엄지 발톱에 생긴 까만 멍이 클로즈업 되며 눈으로 들어왔다.

 

지난 겨울 어느 날인가 축구를 하다가

왼 발로 공을 찰 때 생긴 멍이었다.

땅도 얼고 

당연히 축구공도 날씨만큼이나 얼어서

조금 과장하면 돌처럼 딱딱했.

차 안에 두었던 축구화도 당연히 날씨 때문에 줄어들었을 것이다.

발에 꼭 끼는 축구화를 신고 

왼 발로 돌 같은 공을 찼으니 

그 순간 충격이 완전히 왼 쪽 엄지 발톱에 전달되며

'!'하는 신음이 입에서 새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며 보니

발톱 아래 쪽에 까맣게 멍이 들었는데

새끼 손톱 만한 크기로 마치 검은 봉숭아 물을 들인 것 같았다.

 

발톱의 멍은 일주일 동안 내게 고통을 느끼게 해 주었다.

걸을 때마다 콕콕 쑤시더니

그 아픔은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발톱의 멍은 앨범 속 어린 시절의 사진처럼 

일부러 눈길을 주지 않으면 별 존재감이 전혀 없는

추억의 한 부분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다.

 

시간이 자라며 발톱이 자라 

멍이 있던 부분의 3 분의 1 어제 깎았다.

멍의 반을 깎아도 될 것을 부러 조금 자른 것이다.

다음이나 아니면 그 다음에 발톱을 깎을 때쯤이면'

그 멍의 자취는 영영  발톱에서 사라지고 말지도 모르겠다는

아쉬움의 표지로 조금만 자른 것이다.

 

꽤 오랜 시절 내 발톱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멍의 한 부분을 잘라내며 

조금은 시원하고 통쾌한 기분이 들어야 정상일 것 같은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 멍이 주었던 아픈 기억과 함께

축구를 하며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마저 희미해질 것 같은 조바심이 난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축구를 하지 못한 시간이 

벌써 한 달을 훌쩍 넘었다.

축구를 하지 못하고

흘려 보낸 시간은 곧 두 달이 될 것이다.

 

그런데 답답한 것은

언제 다시 축구를 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데

발톱은 오늘도 자라고

언젠가 아직은 남아 있는 멍 자국 마저 깎아내야 할 날이 올 것이다.

 

나는 오늘 발톱이 천천히 자랐으면 좋겠다는

참 어색하고 헛된 희망을 품어 본다.

가능한 한 멍 자국이 내 발톱에 오래 남아 있어서

지난 날들의 아픔보다 더 컸던 기쁨과 행복을 

떠 올려주면 좋을 것 같다는 바람인 것이다.

 

살아가는 일이 꼭 기쁜 것만은 아니다.

발톱에 생긴 멍 같은 아픔을 동반하기도 하는 것이 삶이다.

그러나 그런 아픔이 필연적으로 따르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마음 먹기에 따라 

살아볼 만한 가치와 기쁨이 있는 것이 삶이다.

 

그러니 내가 멍 자국이 있는 발톱의 한 부분을 깎아 내며

통쾌함보다는 행복감과 기쁨이 사라지는 아쉬움을

더 크게 느꼈던 것 같다.

 

남은 멍 자국이 내 발톱에서 영영 사라지기 전에

다시 축구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내 발톱에 새로운 멍이 하나 더 생겨도 나는 행복할 것 같다.

 

그 멍 또한 내 몸의 일부로 여기며

아픈 기쁨을 한껏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 아픔은 삶이 주는 기쁨에 비하면

내 발톱의 작은 멍같이 

아주 미미할 따름이기 때문이다.

 

이제 아픔도 조금은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아픔만큼 성숙해지는

 

그런 인생.

https://blog.daum.net/hakseonkim1561/2296#n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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