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소에서 생긴 일 - 나는 내가 자랑스럽다.
"Appa consider not working for a couple of weeks,
until the worst of the virus is over."
일요일 저녁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 큰 아들에게 이런 문자가 왔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잠잠해질 동안 2 주 정도 세탁소 문을 닫으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그러면서 우리의 건강 보험에 대해서도 물었다.
우리는 막내 아들이 해병대에 입대하면서
건강 보험을 해지했다.
한 달에 천 삼 백 달러에 달하는 보험료가
가계에 큰 부담이 되어서였다.
사실 보험이 있을 때도 거의 쓰지 않았으니
우리만 조심하면 사실 건강 보험 없이도 살 수 있을 거라는
오기 때문에 그리 하였다.
그리고 보험을 해지하면서 나의 건강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돈 문제에서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어서였다.
그리고 십 년 가까운 세월을 병원 신세 한 번 지지 않고
오늘에 이르렀다.
아들이 문자를 보낸 날은 하루 종일
우리가 살고 있는 뉴욕 시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 수와 사망자 수를
미디어가 앞다투어 공포스러운 어조로 발표했다.
앞으로 2 주 동안이 최악의 상태가 될 거라고
언론은 이구동성으로 사람들을 공포 상태로 몰아 넣었다.
큰 아들이 대표로 문자를 보내기는 했지만
아이들 다섯 모두의 만장일치의 견해를
자기들끼리 조율을 마친 뒤
부드러운 어조로 큰 아들을 통해
철딱서니 없는(?) 아빠에게 전달한 것으로 볼 수 있을 내용이었다.
그 문자를 받고 나는 아주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내 생각으로는 나름 열심히,
그리고 아주 성실히 코로나에 대응 전략을 세웠으니
세탁소 문을 여는 것은 별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하던 나의 태도를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해 볼 기회를 가졌다.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아이들 모두를 걱정시키면서까지 세탁소 문을 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엄청난 적자를 감수해야 하니
그까짓 2 주 동안 세탁소 문을 닫는다고 해도
문을 여는 것과 별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식구 모두가 맘 편하게 문을 닫을까?"
나는 이미 아이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애물단지가 되어 있었다.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위치가 역전이 된 것이다.
아이들에게 효도(?)하기 위해서는 세탁소 문을 닫아야 했다.
일요일 밤 나는 밤 새 뒤척였다.
나 자신이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나는 이내 결론에 도달했다.
문을 열기로.
고뇌와 결단의 순간에
뜬금없이 막내 아들이 생각난 것이다.
막내 아들이 해병대 신병 훈련을 마치고 집에 돌아 와서
군복에 새겨진 명찰을 보여주며 한 말이 떠 올랐다.
군복 상의 한 쪽에는 ''KIM'이라는 이름과 함께
'US MARINE'이라는 이름이 다른 한 쪽에 새겨져 있었다.
자기는 이제 우리 식구 중 하나일 뿐 아니라
해병대라는 새로운 가족의 일원이라는 설명을 잇대었다.
그 때 스무 살도 안 된 막내 아들이
얼마나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던지.
내가 이 엄중한 시기에 아이들 반대를 무릅쓰고
세탁소 문을 열기로 한 것은
내 생물학적인 가족 외에
내가 살면서 세탁소를 하고 있는
지정학적인 가족들을 머리에 두었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격리생활을 하는 요즈음
유니폼을 입어야 하는 경찰, 교정 공무원과 병원 종사자들은'
다른 때보다 더 허리 아픈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기에
적어도 옷을 세탁하는 걱정 하나는 붙들어 매라는 의미에서
문을 여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한 손님이 와서 장례식에 입을 거라며 옷을 맡겼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자기 숙모와 사촌이 지난 주에 세상을 떠났는데
너무 사망자가 많아서 이 번 주로 장례가 미뤄졌다고 했다.
목요일이 장례식이니 수요일 오후까지
옷을 세탁해 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무엇보다도 장례식과 관련된 옷을 세탁하는 데는 무척 관대한 편이다.
가능한 모든 편의를 봐준다.
물론 그러마 라고 안심을 시켜주었다.
그러지 않아도 황망한 그에게
걱정거리 하나는 덜어준다는 마음에 그리 한 것이다.
그에게서 근심스러운 표정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내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총총히 떠났다.
그리고 십 여 분이 지나고
손님 하나가 옷을 찾으러 세탁소 안으로 들어왔다.
지난 토요일에 옷을 맡겼는데
오늘 찾으러 온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 세탁소의 새내기 손님인 것이다.
양복과 흰 색 셔츠를 찾아가며
또 한 벌의 양복과 셔츠를 맡겼다.
요즈음 이런 정장을 맡기러 세탁소에 오는 경우가 드문 까닭에
내 호기심이 발동을 했다.
정장을 입어야 하는 직장인들은 3-4 주 전부터
직장에 가지 않고 재택 근무를 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출근하세요?"
"아, 네 직종이 Essential이라서요,"
"무슨 일을 하시는데요?"
"장례식장에서 일해요."
밀려드는 시신들 때문에 정신이 없고 피로하다고 했다.
자기가 가는 세탁소는 문을 닫았는데
누군가가 우리 세탁소를 추천해주었다고 한다.
그 손님은 당분간 걱정 하나를 던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는 사람들을
어찌 의사와 간호사 같은 의료진으로 어찌 한정 지을 수 있을까?
우리 모두가 자연에서 파생된 재앙으로 힘겨워 하는 이 때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누군가를 위해
뒤에서 작지만 힘을 보태고 있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장에서 일선에서 총을 쏘고 포를 쏘는 사람들만이 군인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들을 위해 밥을 하고 보급품을 전하는 사람들도 다 군인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비록 직접 전투를 하지는 않으나
뒤에서 작은 기여를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이웃이라는 식구를 위해 옷을 세탁하고
아내와 아이들, 우리 식구를 위해서
나는 마스크를 쓰고 또 정성스레 손을 씻어야 할 때이다.
A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page=1&branch=NY&source=NY&category=&art_id=8213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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