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소에서 생긴 일 - 나의 양심불량
지난 주에 한 여자 손님이 거위 털 코트를 세탁소에 들고 왔다.
목이며 소매 그리고 코트 전체가
까만 때가 묻어서 반질반질 윤기가 날 지경이었다.
세탁기에 넣기 전 한 20 분 가량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솔질을 해야 비로소 원래 꼴을 회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세탁기에서 나온 코트는 하얀 빛을 회복했다.
목욕탕에서 갓 나온 것 같은 싱싱한 모습으로 세탁기에서 코트가 나올 때
고단한 노동의 피로는 사라지고 환희의 탄성이 나오기 마련이다.
여자 손님은 그저께 코트를 찾으러 왔다.
처음 자신의 코트를 대할 때는 기쁨의 미소가 얼굴에 번지더니
코트를 받고서는 코트의 소매를 걷소 안 쪽을 유심히 살피는 것이 아닌가?
그녀의 표정은 일순간에 표독스럽게 바뀌었다.
"안 쪽에는 때가 그대로 있는 거 안 보여요?"
돋보기의 초점을 맞춘 뒤 자세히 살펴보았으나
나는 어떤 결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 세탁소에서는 무슨 옷이든 소매 안 쪽도
세탁 전 미리 손질을 하는 것이 규칙이기 때문이고
따라서 그 손님의 코트도 예외 없이 잘 손질을 했던 것이다.
이럴 때, 화도 나고 허탈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경제적인 이유뿐 아니라 손님들이 만족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세탁소 생활을 이어가는 힘이 되는데
이런 경우는 그 반대다.
그런데 올 해로 30 년이 되는 세탁소 경력은
참으로 많은 도움이 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혜, 혹은 꼼수도 늘어가는 것이다.
나는 일단 손님을 돌려보냈다.
다시 한 번 잘 들여다 보고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하면서.
다른 직원에게도 소매 안을 살펴보라고 했으나
아무런 문제를 찾아내지 못 했다.
나는 그 코트를 제 자리에 걸어 두었다.
어제 오후 그 손님은 전투적이 태도로
세탁소 문을 밀치고 들어왔다.
나는 그녀의 코트를 그녀에게 내 밀었다.
그녀는 다짜고짜 코트의 소매를 들추더니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그것 봐요, 훨씬 나아졌잖아요."
아무런 손길을 주지 않아서
어제와 똑 같은 상태의 코트 소매 안을 보면서
그 손님은 자신의 불평 때문에 상태가 더 나아졌다고 확신을 하는 것 같았다.
과연 무엇이 문제였을까?
돋보기를 쓰지 않고도 문제점을 발견하는
그녀의 싱싱한 두 눈이 문제일까?
아니면 나의 양심불량이 문제일까?
만족스럽게 코트를 찾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행복해지기는 커녕 자꾸만 딸꾹질하는 것처럼
쓴웃음이 나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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