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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음치, 몸치, 기계치, - 3치가 살아가는 법

음치, 몸치, 기계치 - 3 치가 살아가는 법






 

 

나는 3치다.

 

찾아보면 나에게 어리석고 못난 면이 이것 뿐이겠냐만은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즉각적으로 눈 앞에 떠오르는 것이

음치, 몸치, 그리고 기계치, 이 세 가지이다.

 

노래를 못 한다.

중학교 때 시민회관에서 합창 발표를 할 때에

음악 선생님께서 

"학선아 너는 입만 벙긋하고 노래는 하지 마라."는 말씀을 하셔서

내가 남과는 좀 특출난 면(?)이 있다는 걸 알아채기는 했다.

 

여자를 좋아한다고

그런 남자들이 모두 다 연애를 잘 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음악을 좋아하기는 해도

내 입을 통해 나오는 멜로디는

작곡한 사람의 의도와는 영 상관이 없어진다.

 

노래를 통해서 누군가에게 감명을 주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내 안으로부터 샘이 샘처럼 솟는다.

이젠 체념의 경지에 이르긴 했어도

아직도 노래 못하는 아쉬움과 서러움이 

잔치가 열리는 곳에 가면 

상처가 덧나 속살이 드러나는 아픔 때문에 가슴이 저려온다.

 

음치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중학교 때인데

내가 몸치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 것은 

그보다도 더 시간을 거슬러

국민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가야 한다.

 

그 당시에는 국민학교에 입학 하면

왼 쪽 가슴에 손수건을 달고

교실에 들어가기 전에

며칠 동안은 운동장에서 율동과 노래를 배웠다.

 

높은 연설 대에

여 선생님이 노래와 율동을 하면

새로 입학한 1 학년 아이들은 악을 쓰며

노래와 울동을 따라 했다.

교실 밖으로 옮겨진 풍금에서는 

바깥 공기를 쐰 까닭인지 아주 밝고 명랑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해님이 반짝, 해님이 반짝"

혹은 "웃읍시다 하하하" 같은 가사의 노래를 

율동과 함께 따라 했다.

그런데 원래 박자보다도 한 박자 느린 내 몸짓으로 율동을 하면서

나는 참으로 힘에 겹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 앞에 있던 여자 아이가 "해님이 반짝"하는 가사와 함께

양 손을 위로 든 채 양 손목을 스냅을 이용해 현란하게 흔드는 걸 보고

난 그냥 넋이 빠졌다.

그리고 절망했다.

그것은 내 기억 속, 최초의 절망적인 기억이 되어

 아직도 화석처럼 지워지지 않은 채

때때로 고개를 내밀어 절망을 반복해서 경험하게 한다.

 

그리고 나는 자타 공인 기계치다.

내가 가장 무서운 말이

아내 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올 때이다.

 

"여보 Home Depot'에 갔다 오세요."

"여보 Ikea에 가서 테이블 하나 사 옵시다."

 

물건을 사는 것은 문제가 아닌데 그 다음이 문제다.

분해된 가구를 조립하는 일은

피라밋 안의 미로에서 길을 찾는 것이 

오히려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언젠가 집에 전구가 나가서 바꾼 적이 있는데

어두웠던 방이 훤해지는 모습을 보는 내 꼴을 보고

두고두고 남에게 내 험담을 하며 즐거워하는 마님에게

이렇다 할 반응을 내보일 수 없을 정도로 

나는 자타 기계치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살아 온 것을 보면 기적 같다는 생각을 한다.

 

특별히 세탁소를 하며

음치나 몸치라는 약점 때문에는 별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지만

기계에 대한 무지함은 30 년 동안 거의 치명적으로 내게 고통을 주었다.

세탁소의 기계라는 것이 몇 종류가 되지 않음에도

그들은 늘 나와는 상호 비 호감의 관계를 지속해 오고 있다.

 

그저께는 세탁소의 컴퓨터의 전원을 올렸음에도

모니터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모니터와 컴퓨터의 선을 뺐다가 다시 연결하니

모니터에 빛이 들어왔다.

그 때의 장엄한 느낌은 천지창조 때,

"빛이 생겨라,"하지 빛이 생겨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어둠과 빛 사이의 시간 동안

내 마음은 암흑의 심연 속에 빠져 있었다.

 

어제는 보일러가 문제를 일으켰다.

리턴 탱크에서 보일러도 들어가는 관에 밸브가 있는데

그 밸브에 무언가 불순물이 끼어서 보일러 안으로 물이 흘러 들어가지 않는 문제가 생겼다.

내 마음은 또 암전 상태가 되고 말았다.

 

기술자를 부르면 돈도 돈이지만

서 너 시간 일을 할 수 없으므로

돈 낭비 시간 낭비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생각 끝에 망치를 들고 밸브를 살살 두드렸다.

운이 좋으면 밸브 사이에 낀 불순물(내게 녹 슨 쇠)이 빠져나올 수 도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문제가 쉽게 풀렸다.

 

또 어둠 속에서 빛이 생겼다.

 

그런데 오늘은 드라이어가 말썽을 부렸다.

분명 전원은 들어오는데

시작 버튼을 눌렸음에도 작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파넬을 바꾸기 위해서는 부품가격 몇 백 달러에다가

수고 비를 합치면 500 달러는 아주 가볍게 날아갈 것 같았다.

게다가 부품이 쉽게 구해진다는 보장이 없으니

아무리 빨라도 하루 이틀은 꼬박 걸릴 것이 뻔했다.

 

그래서 드라이어를 찬찬히 살리기 시작했다.

드라이어의 도어와 본체의 접촉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기계가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쯤은 기계치인 나도

인문학적인 추론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혹시 먼지 같은 것이 끼어 있어서 드라이어 본체와 도어 사이의

교류를 단절시키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먼저 조심스럽게 도어를 열고 찬찬히 살펴 보았다

그런데 도어와 본체의 접촉하는 곳에

1 전짜리 동전보다도 작은 구릿빛 동전이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접촉이 이루어지는 곳은 자석으로 되어 있어서

문을 닫으면 자동적으로 전류가 흐르도록 설계가 되어 있었는데

그 동전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양측의 교류를 방해함으로써 

오늘 버젼의 암흑기가 시작된 것이었다.

 

그 작은 동전 하나가 가져 온 암흑시대.

 

어디 세탁소에서 경험한 암흑기가 한 두 번이어야 말이지.

기계치인 나도 이력이 날대로 났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세탁소의 암흑시대이지만

'궁즉통'이라는 말도 있듯이 

마음과 열심을 다하면

암흑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고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기계치로서 살아남는 길은 

오늘도 마음과 열심을 다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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