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걱정거리
토요일 오후에 예쁘장한 아가씨가
베이지 자켓을 들고 세탁소에 찾아왔다.
예쁜 얼굴과는 달리 얼굴 표정은 어두웠다.
그녀가 들고온 자켓에는 붉은 얼룩이
앞 쪽에 묻어 있었는데
그녀의 얼굴 표정으로 보아 사태의 심각성을 붉은 빛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어떤 종류의 얼룩인지 물어 보았는데
그녀는 '고추장'이라고 한국말로 대답을 했다.
무얼 먹다가 이런 사태가 벌어졌냐는 질문에는
'김치찌개'를 먹다가 옷에다 흘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제는 금발의 아가씨에게 한국말을 듣는 것이 그리 신기한 일이 되지 않게 되었다.
그녀의 경악은 나의 근심거리가 되어버렸다.
내년이면 세탁소를 연 지 만 30 년이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이런 종류의 얼룩이 묻은 옷은 세탁을 한 경험이 없어서
저으기 당황스러웠다.
나는 일단 아가씨를 안심시키고 돌려보냈다.
김치찌개를 먹다가 흘린 얼룩이라면
기름과 식물성 염료가 혼합이 된 것으로
얼룩을 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기름기를 뺀 뒤에
식물성 염료를 빼야하는
귀찮고도 어려운 숙제를 남기고 그녀는 떠났다.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
오늘 아침 세탁이 끝난 자켓에는
어떤 걱정이나 근심거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깨끗했다.
물론 내 마음에 남아 있던 한시적 걱정거리도 사라졌다.
얼룩이 빠진 옷을 바라보는 것은 세탁소를 하면서
경험할 수 있는 카타르시스이기도 하다.
처음 미국에 이민왔을 때
혐오음식의 범주에 들던 김치를 포함한 한국음식이
이젠 건강식으로 맛있는 음식으로
빛을 보기 시작했다.
한국음식이 인기를 끌게 된 것은
무척이나 기뻐해야 할 일이기는하나
앞으로 김치국물이 묻은 반갑지 않은 세탁물이 늘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이 드는 오늘 아침이다.
30 년 전 세탁소를 처음 열 때
붉은 김치국물 얼룩 때문에 괸을 하게 될 날이 올 줄은
정말 꿈에서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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