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의 Navigli 지역의 운하
우리는 두오모와 그 인근을 둘러 본 뒤
다시 갔던 길을 거슬러 호텔로 돌아왔다.
밤 새 비행기를 타고 밀라노에 도착한 뒤
별로 쉴 틈도 없이 돌아다니느라
피곤할대로 피곤한 육신을 잠시 쉬기 위해서였다.
낮의 더위도 피하고
피로도 털어버릴 수 있는 휴식은 참으로 달았다.
오후의 해가 기울 무렵 우리는 호텔을 나와
택시를 타고 Navigli(아마 나빌리라고 읽으면 될 듯) 지역으로 향했다.
영어로는 이사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 지역의 식당 한 곳의 주소를 택시 기사에게 주었다.
택시 기사는 내 나이 또래의 남자였는데
띄엄띄엄 영어를 했다.
자기 아들은 캐나다에서 유학을 한 덕으로
영어를 잘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 또래의 기사들은 영어를 잘 못 하는데
자기는 아주 조금이지만 영어를 한다고 하면서
영어를 하는 것이 자랑스러운 일이라는 걸 은연중 드러내었다.
10 여 분 달려 택시 기사는
우리를 운하를 끼고 있는 한 식당 앞에 내려 주었다.
아직 어두워지기 전이라 운하 주변이 그리 붐비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면 사람들로 거리는 미어터진다고 했다.
따라서 차가 들어 올 여지가 없다는 설명을 택시기사는 해주었다.
운하는 한 쪽을 돌아
다른 쪽으로 흘러 나갔다.
돌아 나가는 곳에 물이 모여 있는 작은 인공 연못(호수)가 있었다.
운하 양쪽으로는 식당과 선물가게,
술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두오모를 건설할 때
대리석을 실어나르기 위해 건설되었다는 이 운하는
레오나르도도 설계에 관여했다고 전해진다.
잠시 시간을 끌며 해가 넘어가기를 기다리며
사진을 찍었다.
해가 지면서 젊은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여행객 뿐 아니라
밀라노의 젊은이들이 싼 가격에
술 한잔, 칵테일 한잔, 그리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들이
운하 양 옆에 남대문 시장의 좌판상처럼 늘어서 있었다.
큰 길에서 들어오는 초입의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아무데나 앉아서는 안 되고
종업원이 지정하는 차리에 차례대로 앉아야 했다.
그 곳에는 이러한 유형의 음식점이 여럿 성황리에 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큰 길에서 멀어질수록 가격은 조금씩 내려가는 것 같았다.
먼 곳에는 7 유로라고 상점 앞에 써 놓은 곳도 있었다.
11 유로.
칵테일, 혹은 술 한 잔 가격이었다.
우리는 피냐 콜라다를 주문해서 한 모금 마시고
나머지는 그대로 남겼다.
피냐 콜라다는 파인애플과 코코넛 크림에 럼을 섞은 칵테일인데
럼의 비율이 살짝 높아서
내 입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 쪽에 차려진 뷔페 음식은 제한없이 먹을 수 있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이 곳에서 최고의 식사를 했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잘, 그리고 배불리 먹기가 어려운데
여기서는 11 유로에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사실은 가볍게 술 한 잔 하는 곳이지만
나는 술보다는 음식을 먹는데 열중했고
포만과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다.
여행 중에 모나코에서 비싼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 곳에서보다 여기서 더 행복하게 식사를 했다.
살아가면서 행복해질 수 있는 요령이 늘어간다.
요령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삶의 지헤라고 해야 더 맞을 것 같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운하의 물도, 그리고 시간도
그 어느 것도 우리를 위해 멈추는 일은 없었다.
끊임없이, 쉬지 않고 흘렀다.
우리의 삶도 그럴 것이다.
순간순간을 사는 일, 그리고 살아내는 일이야 말로
내가,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다시 한 번 영화 'Dead Poet's Society'에서 John Keating의 입을 빌어
나왔던 경구 'Carpe Diem'이 떠 올랐다.
미련없이 운하와 이별했다.
운하에 머무는 동안 행복했으면 될 일이다.
잘 머물다
미련없이 떠나는 일이 삶이라는 걸
다시 마음에 새겼다.
지상은 불빛으로 여전히 출렁였지만
하늘엔 어둠이 덮였다.
살면서 이젠 훌훌 털어버리는 일이 점점 수월해진다.
축복같은 밤이 깊어가는 운하를
슬며시 빠져나와 호텔로 돌아왔다.
운하의 물줄기는 내 기억의 실핏줄 사이를 돌아
내 온 몸을 돌고 있었다.
나는 죽음보다도 더 깊은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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