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MBO 산책
토요일 오후,
다섯 시 가까운 시간이 되어 세탁소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져나왔다.
오후 1 시부터 세 시 정도까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바빴다.
손님들이 옷을 싸들고 들어 오는데
마치 파도가 밀려오듯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게 다 돈인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같이 30 년 가까이 세탁소 카운터에서 일을 한 사람도
두어 시간 그런 식으로 일을 하다 보면
마치 권투 선수가 상대방 선수에게
무자비하게 두들겨 맞고
링 위에 자빠질 정도로
거의 실신 상태에 이르게 된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
그것이 곧 지옥인 것이다.
두어 시간 동안 내가 받아서
컴퓨터에 입력한 옷의 개수가 200벌이 넘었다.
옷을 받을 때 잘 관찰을 해야
나중에 생길 수도 있는 큰 문제를 미리 막을 수 있는데
아무리 경험이 많은 나로서도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눈이 빠지는 것 같았다.
오전 내내 파리 날리고 있다 갑자기 밀어닥친 옷들로
두어 시간 몰아지경에 빠졌다가 헤어 나올 때쯤,
내 몸과 영혼은 이미 너덜너덜해졌고
눈은 빨갛게 충혈이 되어 있었다.
무조건 세탁소를 탈출을 감행했다.
더 이상은 내 정신 상태를 정상으로 유지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위기의식이 작용을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갈 수 있는가 장 가깝고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DUMBO였다.
이틀 동안 흐리고 비가 오던 날씨도
마침 화창하게 개어서 걸어 다니기에 썩 괜찮은 날씨였다.
카메라의 View Finder를 통해 세상을 마라 보면
맺히는 상에 집중하게 되니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
내가 스트레스를 극심하게 받을 때
사진을 찍으러 가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도 있는 것이다.
몇 해전까지만 해도 DUMBO라는 말을 들으면
월트 디즈니 사에서 만든
코끼리가 나오는 영화만 머리에 떠 올랐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아이들의 대화 중 DUMBO라는 말이 내 귀를 스쳤는데
DUMBO=코끼리라는 공식을 대입했더니
그 의미가 닿지 않을뿐더러
그 문장을 이해하려 하다
내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더니
브루클린 다리와 맨해튼 다리 밑에 있는
동네 이름이라는 것이었다.
코끼리(DUMBO라는 이름을 가진)에 있는
그리말디 피자집의 피자가 맛이 있다는 말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DUMBO라는 동네에 있는(코끼리 이름이 아니고 동네 이름)
Grimaldi 피자집의 피자가 그렇게 맛이 기가 막히다는 말을
아이들 설명을 듣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DUMBO( Down Under the Manhattan Bridge Overpass)는 말 그대로
맨해튼 브리지 아래에 있는 강마을이다.
창고와 커피와 담배 공장 등이 있었던 곳이다.
개발을 통해 이제는 식당과 갤러리, 상점들로 뉴욕 관광을 오는 사람들이 즐겨 방문하는 곳이 되었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 역으로 올라갔다. 말이 지하철이지 공중에 길이 나 있는데
윌리암스 다리를 건너 맨해튼으로 들어가면서
비로소 진정한 지하철이 된다.
지상의 지하철을 타러 지상에서 공중으로 올라가야 한다.
뉘엿뉘엿 기울기 시작하는 햇빛이
방음용으로 설치한 벽 벽의 스테인드 클래스를 통해
지하철 역 이에 내려앉았다.
나는 혹시라도 자연이 만든 작품을 훼손할 것 같아
밟지 않고 돌아왔다.
덤보에 가기 위해
Broadway Junction에서 지하철 노선을 갈아타야 했다.
A 지하철을 기다리는 순간(A 노선은 말 그대로 지하에 있다.)
어디선가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와 바닥에 앉았다.
(어떻게 들어왔지?)
비둘기가 지하철 안에서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
그 곁에 지하철에서 스낵을 파는 사람이 지나간다.
살아가는 일의 고단함,
그리고 불가사의함.
자유의 여신상.
Lady Liberty.
역에서 내리니 공사 중인 건물 임시 외벽에 이런 글이 쓰여 있다.
이 공터 옆으로 걸어 내려가면
강으로 내려가는 구름다리가 있다.
그런데 막혀 있다.
공터 한 귀퉁이에서 여자 아이 둘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간이 멈춘 듯하다.
강 건너 맨해튼의 건물 안에서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하느라 무척 분주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의 사람들은 무척 분주한데
내 눈앞에 보이는 두 아이의 시간은 그대로 멈춰 선 것 같다.
빗살무늬.
나에게 기하학은 수학이라기보다는
예술의 영역이다.
건 물 뒤에 피어 난 풀 한 포기.
그리고 초롱을 닮은 꽃이 응달을 밝히고 있다.
이 건물은 얼마 전까지도 'Ice CreamFactory'라는,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그런데 문이 닫혀 있다.
신문 기사에서 비싼 렌트를 견디지 못해서 문을 닫았다고 언뜻 읽은 것 같다.
그리고 그 전에는 배의 불을 끄는
소방정의 본부인 소방서였다.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
응달에 무심하게 피어 그늘에서 빛을 내는 풀꽃 한 포기.
그 기특함
식당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
그리고 다리.
식당 유리창에 비친 다리.
실내등을 보면 알 수 있다.
멋진 포즈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
우리는 사진 찍힐 때
렌즈를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거나,
좀 폼을 잡기 위해서는 먼 하늘 바라보던가 했다.
요즘은 사진 찍을 때의 포즈가 얼마나 다양한지 모른다.
생각도
감정도
참 다양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모터 사이클을 타고 온 남녀.
주차 공간이 별로 필요하지 않으니
쉽게 왔다가
어려움 없이 휘익 떠난다.
유리창에 맺힌 다리의 모습.
굴절이 되어 마치 추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
남녀 한 쌍이 나란히 강 가에 앉아 있다.
아무 말이 없어도
기쁨과 행복에 샘솟는 시절,
이른바 청춘이다.
"참 좋을 때다."라고 하려다
서둘러 나오려는 말을 입 속으로 집어넣었다.
이 말을 하는 순간 나는 노인의 영역에
발을 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 아이가 바라보는 것은 무엇일까?
나도 저리 기쁜 순간이 어릴 적 있었을까?
지는 햇살에 빛을 받은 빌딩의 꼭대기가 조명처럼 빛이 난다.
여기는 회전목마
한 바퀴를 돌면 그 자리에 되돌아온다.
가끔씩 행복했던 그 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회전목마를 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지금이 그 순간일 수도----
결혼식 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들
맨해튼 다리 건너 빌딩의 그림자가
유리창에 그림을 그렸다.
썩 괜찮은 추상화 같다.
다시 내 사진
또 내 사진
골목길을 다니다 발견한 간판.
앞에 말 한 두 가지 DUMBO를 간판 하나에 담았다.
그렇지, 이곳에 이런 것 하나는 있어야 한다.
아주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고물과 잡동사니를 파는 가게 안에
고양이 한 마리 무료하게 바깥을 바라보고 있다.
'삶이란 무엇일까?'
나도 60 년 넘게 살았지만
모르겠다.
시집을 파는 책방
'Audre Lorde'라는 시인의 시 한 구절?
알지만
모르겠다.
예전에 창고 같은 용도로 쓰이던 건물이었을 것이다.
한 청년이 책을 읽고 있다.
흔적.
철로의 흔적이다.
강물 가까이까지 길이 있었는데 이젠 끊어지고 사라졌다.
지는 햇살이 건물의 선을 따라 빠르게 흐른다.
배가 닿던 자리.
해가 지려 하는데
강 가를 헤매고 다니는 너는 누구니?
예쁜 꽃 그림,
그 아래 별로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삶 하나.
Brooklyn Bridge 교각 사이로 보이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여기가 사진 찍는 포인트라 알려진 곳.
사진 찍는 사람들로 늘 붐빈다.
아이스크림 먹으며
석양을 향해 걷는 두 소녀.
젓가락 같은 긴 그림자를 남겼다.
내 삶의 그림자도 점점 길어지고 있음을---
색들의 집합.
죽은 색과,
살아 있는 색을 구분할 수 있는가?
Citi Bike에 앉은 마릴린 몬로의 치마가 바람에 날린다. 눈길도 주지 않고 직진하는 청년 셋.
너희들 목석이니?
요기할 것이 있나 하고 이층에 올라갔더니
너무 시끄러워서 화장실 들렸다가
바로 퇴각.
외진 곳임에도 무척 붐비는 까닭에 눈치도 안 보고 화장실 다녀옴.
그림자가 생기는 시간.
첫자리로 돌아왔다.
해가 지고 있었다.
비행기 한 대가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는 나의 등 뒤에도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거실의 스탠드에 불이 켜지고------
제라늄의 붉음도 그 선명도가 점점 흐려지기 시작한다.
밤이다.
결혼식 사진 촬영은 밤에도 계속된다.
거의 들춰 보지도 않는 우리 부부의 결혼식 사진.
"멋진 야외 결혼식 사진 없어도
잘 살면 그만이지, 암 그렇고 말고."
속으로 말하며 이런 상황이 'Sour Grape'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집에 오는 길에 아직도 결혼식 야외 촬영을 하고 있는 예비 신랑 신부를 만났다. 오후 내내 서너 차례는 본 것 같다. 사진사가 한국말을 하는 걸로 보아 한국 사람들인 것 같았다
마음속으로 축복을 해 주었다.
사진보다 더 멋진 실제의 삶을 살기를 -------
삶은 긴 그림자를 남기며 석양 속으로 걸어가는 것.
Shakespeare가 Macbeth에서 그의 입을 빌어 말한 것처럼 삶이란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그림자가 아닐까?(Life's but a walking shadow)
내 등 뒤로 무엇인가 남는 것 같지만
결국 어둠은 모든 자취를 지워버리고 만다.
다 사라지고 마는 삶,
걷다 보니 내 어지럽던 생각과 번뇌도 다 사라졌다.
죽음이야 말로 진정한 해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의 번뇌는 내일 하기로 마음을 잡았다.
내 마음의 번뇌가 모두 다리로 내려온 것 같았다.
나는 지하철 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에 가면 나는 오늘의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죽음이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모든 고통과 번뇌를 없애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발걸음의 무게를 많이 덜어주었다.
어서 죽. 고.싶.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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