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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뉴욕 시내 기웃거리기

봄바람처럼 3 -Williamsburg Bridge

봄바람처럼 3 -Williamsburg Bridge

 

나는 차이나 타운 거리를 걸으며

여기저기 내 시선을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식당 간판을 스캔했다.

 

내가 찾는 식당의 이름은 '쓰.오.룩.'(456)이었다.

 

마지막으로 간 것이 30 년 세월을 훌쩍 건너뛰었으니

내 부실한 기억으로 그곳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영화 속의 우연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눈알을 돌렸다.

 

그러나 매일 그리운 마음으로 456을 기억했던 것도 아니고

이리 불현듯 떠오른 생각만으로

영화가 현실이 되기엔 필요조건이

턱 없이 부족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거나

이리저리 수소문을 하면 못 찾을 리가 없지만

그 식당에 대한 나의 그리움의 무게는 

다소 게으른 내 마음을 쏟아부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때 456 식당에서 먹은 음식들 대부분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한 가지 잊지 못할 것이 있었으니

바로 'Fish Maw Soup'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으로

이민 초창기에 먹었던 일종의 'Soul Food'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당시엔 그 수프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먹었는데

육체적, 정신적인 허기 때문에

그것을 따지고 자시고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요즈음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알아보니

커다란 생선의 부레를 말린 것을 주원료로 국을 끓인 것이었다.

 

크림 색이 나는 Fish Maw Soup는

끓여 놓은 곰국이 식었을 때처럼 걸쭉했는데

내용물은 기억이 없고

수프 위에 장식처럼 놓여 있던 실란트로의 향이 압도적으로 강했다.

 

내 이민 초기의 시간들의 냄새를 맡으면

아마 실란트로의 향이 날 것이다.

내가 일하던 야채 가게에서,

그리고 Fish Moss Soup에서.

 

'파파야 향기'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는데

내 이민 초창기를 영화로 만들고

제목을 '씰란트로 향기'라고 하면 

꽤 근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나간 나의 시간에서 풍겨 나오는 씰란트로 향기는 강하고 향기롭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아니 오히려 밤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브루클린의 야채 가게 문을 닫고

마지막 정리까지 마친 뒤 바삐 서둘러도

맨해튼에 있는 456 식당에 도착하면 

아무리 후하게 쳐도 밤 아홉 시가 훌쩍 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식당은 그리 넓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우리는 늘 2 층으로 안내되었다.

거기서 언제나 우리는 Mr. Woo를 만났다.

그 Mr. Woo라는 중국인 웨이터는 

우리 장인어른과 아주 막역한 사이여서

아주 오랜동안 안부 인사가 오갔다.

 

자리에 앉으면

우리가 음식을 주문하기 전에

Mr. Woo는 우리가 먹을 음식을 대 여섯 가지 나열했는데

그것은 그의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어서

우리가 방문할 때마다 어김없이 반복 재생되었고

늘 만장일치로 Mr. Woo의 원안대로 주문이 통과되곤 했다.

 

그 요리 중 Fish Maw Soup의 기억은 아직도

기억할 때마다 행복이 아주 후하게 묻어 나오는데

매운 소스를 친 후에 밥을 말아먹으면

내 입 속이 극락이 되었다.

 

그날도 허기진 배와 영혼이 Fish Maw Soup으로

어느 정도 채워진 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위가 고요한 것이 아닌가?

 

주변에 다른 손님은 없었고

우리뿐이었던 것이다.

 

수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내가 

Mr Woo에게 몇 시까지 영업을 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영업시간은 이미 지났고

주인이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다른 종업원들은 다 퇴근하고

자기 혼자 남아서 서빙을 하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 장인어른 지갑이 두둑한 팁 때문에

많이 가벼워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중국인들에 대한 많은 편견이 있는데

그날 이후 중국 사람들에 대한 나의 선입견은

많은 부분 바뀌었다.

 

봄바람 속에 내 키보다도 작은 Mr. Woo가

조금 한쪽으로 비뚤어진 입으로

웃는 모습이 언뜻 보였다.

Williams burg Bridge이야기를 쓰려다

차이나 타운의 사설이 길어져

사진만 올리고 기회가 있으면

다음으로 미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