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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뉴욕 시내 기웃거리기

봄바람처럼 1 - Brooklyn Bridge

봄바람처럼 1 - Brooklyn Bridge


일요일 아침 알람 소리에 맞춰 눈을 떴다.


뉴저지로 축구하러 가야 하니 

일요일 아침에는 평소보다 한 시간 이르게

알람을 설정해 놓았다.

그래도 보통 일요일에는 알람이 제 구실을 하기도 전인 

새벽 서너 시에 잠을 깨는 게 보통이다.

일 주일에 한 번 뿐인 축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늦잠으로 날려 보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는 건

밥 새 잠을 푹 잤다는 걸 의미한다.


운동장에 도착해 보니

몸의 컨디션도 좋은데

날씨마저 완벽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청명했다.


우리는 축구하기에 참 좋은 날씨라고 했지만,

야외에서 하는 활동이면

그것이 골프가 되었든, 

아니면 등산이 되었든

더 이상 좋을 수는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축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혼자 이른 점심을 먹고

길을 나섰다.

(존엄은 이탈리아 여행 중)


처음엔 목적지를 SoHo로 잡았다.

SoHo는 South of Houston Street을 합치고 줄여서 만든 말이다.

카페와 식당, 그리고 갤러리등이 

참빗처럼 빼곡하게 들어선 곳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가난한 예술인들의 허름한 작업실이 많았었는데

이제는 관광 명소가 되어서 사람들이 많아지니

'gentrification' 현상이 발생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유명 브랜드 매장을 비롯한 쇼핑가로 더 알려져 있다.


나야 쇼핑이 목적이 아니라

그저 어슬렁거리며 다니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발길 닿는 대로, 눈길 가는대로

시간을 보내기에는 SoHo보다 나은 곳도 별로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

목적지를 그 곳으로 점을 찍은 것이었다.


그런데 소호 가는 전철을 타고 가다 보니

(나는 A 지하철은 익숙하지 않다.)

갑자기 High Street Station이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자

나도 모르게 지하철에서 서둘러 내리고 말았다.

마치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High Street 역은 

Brooklyn Bridge와 Dumbo가 있는 곳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나의 뇌가 기억을 한 때문이었다.


어둔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와 보니

봄빛이 내 눈으로 쏟아져 들어 왔다.

처음으로 내려 본 곳이었으나

주변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Brooklyn Bridge며 Dumbo, 

아들이 변호사 선서를 한 New York State Supreme Court 등등,

나와는 이미 안면을 튼 경치가 순순히

내 눈 안으로 흘러 들어 왔다.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지만 그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인파의 흐름은 참으로 내 눈에 익었다.


강 쪽으로 내려갈까?

아니면 강 위로 올라갈까?


잠시 망설이다 강 위로 방향을 틀었다.

다시 말 해서 Brooklyn Bridge를 건너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한 낮의 봄날씨는 약간 덥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해서

다리 위를 걸으며 더위도 피할 겸,

강바람에 실려 오는 봄의 향기도 맡아볼 요량으로 그런 선택을 한 것이었다.


다리 밑으로는 강물이(East River),

다리 위에는 사람의 물결이 흐르고 있었다.


완벽한 봄 날에 집 안에 있는 것은

범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순간,

그것을 잡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면

아쉽게 놓치고 만다.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일 때

봄을 느껴야 한다.

기다리지 않고

그렇게 무심하게 봄날은 가기 때문이다.


다리 위에

가는 사람들, 오는 사람들,

가는 자전거, 오는 자전거들이

쉬임 없이 흐르고 있었다.


마치 그 흐름이 봄인것 처럼.



창가.

아내의 뜰. 

봄볕을 받아

예쁘게 물이 든 다육이들.



봄이어도 내 안에 웅크리고 있으면

봄을 만날 수 없다.


봄이어도 늘 겨울을 사는 사람들도 있다.



다리 초입에 보이는 어느 건물.

'DUMBO'


다리 위에서 보이는 어느 건물.

설계 자체가 특이해서 한 장.

군데군데 창문이 열려 있어서

통일과 조화에 반기를 들었다.


이런 모습을 보는 게 나는 즐겁다.

그리고 귀엽다.



멀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인다.

그리고 바로 앞에 보이는 다리가 Manhattan Bridge.

이 다리 밑이 DUMBO



긴 뾰족탑을 머리에 인 건물이 WTC 1(World Trade center)


다리는 두 개의 레벨로 되어 있는데

아래는 차량들.

위에는 사람들과 자전거가 다닌다.

사람들이 다니는 곳은 나무가 깔려 있는데

자전거가 지날 때면 우두두두 하고 소리가 난다.



Brooklyn Bridge는 교각 역할을 하는 탑이 두 개가 있고

쇠로 된 로프가 이리저리 교차되며 연결이 되어 있다.

다리 형태는Cable Stayed/ Suspension Bridge라고 하는데

건축 용어를 모르니 패스.

현수교와 출렁다리의 결합?

실제로 사진을 찍는데 때로 다리가 심하게 흔들려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건축 공학적으로 설계가 되었다고 하지만

기하학적인 아름다움 또한 빼어나다.


두군 데 탑 위에 성조기가 있는데

2014 년 누군가가 그 것을 내리고 

하얗게 탈색한 성조기를 걸어 놓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영원히 바짝일 것 같은사랑,

그 사랑에도 녹이 슨다.



다리에 자물쇠를 채우는 사람에게 부과되는 100 달러의 벌금 표지.

바로 그 곳에 자물쇠를 채운 어떤 사람.


내가 경찰이라면

100 달러 벌금보다 자기들의 사랑의 무게에 더 비중을 두는

그 사람(들)에게 벌금 고지서를 주지 않을 것이다.


귀엽지 아니한가?

유머와 패러독스.

이런 앙증맞은 반항은 살아가면서

꼭 필요하다.




어디서 준비했을까?

Tommy와 Lara.

그대들도 여기다 자물쇠를 채우고

열쇠는 강물에 던져 버렸니?


다리 위의 자물쇠는 주기적으로 시 당국이 제거를 하는데

열쇠를 제거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 했다.

강 속을 뒤지면 엄청난 열쇠들이 발견될 것이다.

(어릴 적에는 보이지 않는 물 속의 열쇠를 보는 나를 나는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런데 살아가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 함에 조금씩 절망감을 느끼고 있다.)



어수룩한 솜씨로 쎌카 한 장.

사진은 정직하다는데

찍힌 나를 보면 사진이 그리 정직하지 않은 것 같다.



빨간 모자에 빨간 삐딱 구두의 여자.

한 껏 멋을 내긴 했는데

아무래도 나무 판자로 된 출렁다리를 걷는 건 무리.

다리 위를 걷다 다리에 무리가 생긴 듯.

여벌로 준비한 운동화로 갈아 신는다.

멋 부리는 것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세상의 모든 멋쟁이들에게 존경을-----



만세!

만만세!!!!


딸을 어깨 위에 올린 아빠,

아빠 어깨 위에 올라 앉은 딸.


세상에 부러울 게 없을 것 같다.







나는 천천히 봄바람처럼 걸어서 다리를 건넜다.

Brooklyn Bridge는 1869 년에 공사를 시작해서

1883 년에 길을 열었다.

설계와 준비 기간까지 합치면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수 많은 사람들의 땀과 정성이 그 다리에 모아진 것이다.


서로 다른 두 개의 다른 세상이 

이 다리로 연결되어 더 풍요로운 세상으로 변하게 되었다.


깊은 강물 위에 다리를 놓겠다는 생각을 사진 사람(들)과

그 생각을 구체화하고 눈 앞에 그 꿈을 실제화하기 위한

많은 사람들을 나는 다리를 건너며 생각했다.


다리.


내겐 이런 다리를 만들 능력이 

물론 없다.


그래도 사람과 사람의 마음 사이를 잇는 다리.

그런 보이지 않는 다리는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즐거이 강 물 위에 외로이 떠서

걸어갈 수 있도록

넙죽 엎드려 내 등을 내어 주는 일.


나는 봄바람에 이끌려 맨하탄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