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매화 마을
한국을 다녀 온 지도 벌써 사흘이 지났습니다.
시차를 극복하지 못해서
새벽 두 시나 세 시면 눈을 뜨고 뒤척입니다.
시차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고 몸이 반응하는 대로
순응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뒤척이다 다시 눈을 감으면
한국에서 내 심상에 맺힌 풍경들이 슬라이드를 보듯 스쳐갑니다.
그 중에서도 광양에서 보았던
매화의 희고 붉은 꽃잎들이 하늘하늘 흔들립니다.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가 바로 매화 마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복숭아 꽃, 살구 꽃, 아기 진달래가
내가 매화 마을에서 본 풍경에 등장하지는 않아도
'나의 살던 고향은' 하는 노래가 들리면
나는 불현듯 이 매화 마을을 떠 올릴 듯 싶습니다.
내 기억이 재생할 수 있는 한도에서
나는 거의 유년을 도시에서 보냈으므로
시골의 정감 어린 이미지와 먼 삶을 살아왔지만
이제는 봄, 고향이란 단어를 들으면
거의 틀림없이 매화 마을이 떠 오를 것 같습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새벽에도 곤한 잠을 잘 수 있겠지요.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내 꿈 속에서는
하얀 매화 꽃 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알 듯, 모를 듯 향기가 날릴 것도 같습니다.
혹시라도 꿈 속에서 매화향을 맡거든,
새로 생긴 내 고향 냄새이거니 하고
내 생각도 잠깐 해 주시길 바랍니다.
1980 년, 3 월을 며칠 앞 두고 나는 광주 보병학교로 떠났습니다.
바로 이 곳 용산역에서 출발했고
그리고 목적지는 광주 송정역이었습니다.
나는 보병학교로 떠나기 전,
지금은 아내가 되어 있는 여인에게 이별의 편지를 썼습니다.
그녀는 내가 떠나는 날 용산역에 나와
내게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어찌어찌 해서 우리는 다시 만나 결혼을 했고
거의 40 년이 지나서
함께 용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짧은 여행을 함께 떠나는 운명이 되었습니다.
이 짧은 여행을 함께 하기 위해
우리는 긴 시간 여행을 함께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매화꽃잎처럼
시리고 아름다운 시간이었지요.
곡성 역에 도착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광양으로 이동 중 다리를 건넜습니다.
섬진강입니다.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섬진강 소리를 들으면
그래도 내 마음에 작은 울림이 생기는 것은
아무래도 김용택 시인 때문입니다.
매화마을 가는 길 도랑엔
벌써 진 매화꽃잎들도 있습니다.
매화마을로 가는 길은
사람들과 차가 넘쳐 납니다.
매화마을 가는 길은
온갖 먹거리와 농산품이 넘쳐났고,
약장수의 노래 소리로 시끌벅적했습니다.
나는 물론 고즈넉한 분위기를 좋아하지만
그냥 견디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후회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칡즙.
나는 믿음이 부족한 경향이 있습니다.
한 잔 사 먹고 십년 젊어서 돌아오는 건데----
이 번에도 믿지를 못 했습니다.
한 번 속는 셈 치고----
그런데 잘 안 됩니다.
그럼 이제부터 매화 구경 제대로 해야 겠습니다.
그런데 매화도 매화지만 여기 왕대나무 숲도 운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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