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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한국 여행

제주도 포도 호텔 - 새로운 동요 혹은 자장가

제주도 포도 호텔

 

올 봄 한국에 다녀 오 계획을 세울 때

나는 아내에게 제주에 가고 싶다는 말을 했다.

올 해 방문으로 나는 제주와 네 번의 연을 맺게 되었는데

그 첫 번 째가 대학 1 학년 때이니 40 년을 훌쩍 넘어 버렸다.

 

40 년이 넘었지만

처음 방문 때 백록담을 본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한라산을 오를 때 그리 맑고 청명하던 날씨가

한라산 정상에 올라 백록담을 내려다 보니

갑자기 안개인지 구름인지가 밀려와 물을 덮어 버렸다.

 

벗은 몸으로 목욕하던 여인이

인기척에 놀라 급작스레 치마로 몸을 두르는 것을 본 것처럼

가슴이 뛰었고,

또 그만큼 아쉬웠지만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중문의 어느 여관 툇마루에서 였을 것이다.

보름달이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것을 본 것은.

 

달빛이 물 위를 걸어 나에게로 오는 것 같았다.

그것이 꿈이었는지, 

아니면 현실이었는지 아직도 기억이 흐릿한데 

내가 여자의 몸이었다면,

그리고 그것이 꿈 속이었다면,

나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태몽을 꾼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라산 백록담,

그리고 중문 바다의 달빛은

제주를 신화의 세계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하여 제주는 제법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간직한 채

내 안에서 신화의 땅이라는 

콘크리트처럼 굳건한 고정 관념으로 굳어져 버렸다.

 

미세먼지 자욱한 김포를 떠나

제주 가까이 가자

내 마음은 슬슬 설레기 시작했다.

 

신화의 세계에 가까이 간다는 것은

내가 신화 속 인물로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과 같다.

 

제주가 가까워 지며

비행기 창문을 통해서 보이는 것은

구름같은 것에 둘러 싸인 한라산 정상 부근의 모습 뿐이었다.

바다며 해안 부락의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었다.

 

아, 미세먼지.

 

내겐 신화의 세계인 제주도

미세먼지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현실과 맞닥뜨리는 순간

속이 답답해졌다.

 

제주에 대한 나의 신화,

나의 신앙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 공항에 도착한 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만난

애월에서 바라 본 바다의 빛깔과

포도호텔과의 만남은 내게 새로운 신화와 만나게 해 주었다.

 

사십 년 전 처음 경험했던 제주의 신화는

자연의 신비로움 때문에 쓰여졌다면

이 번에 만난 새로운 신화는

제주의 자연과 이타미 준이라는 건축가 때문에 생겨났다고 말 할 수 있다.

 

사실 나는 포도호텔이 어떤 곳인지

그 포도호텔을 설계한 아미타 준이라는 사람을

알지 못 한 채 그 곳에 발을 디뎠다.

(지금도 별로 아는 바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내가 방문할 곳을 미리 알아보지 아니하는 것은

제일 먼저 나의 게으름과 무성의 탓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사뭇 의도적인 이유에서이다.

 

누군가가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언젠가 읽었던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본 것으로 나는 기억한다.

 

맞는 말이긴 하다.

나는 이 말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무시하기 때문에

여행 다니며 까막눈이 되어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이 수도 없이 많다.

 

그래서 나중에 무릎을 치며 아쉬워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말에는 함정이 숨어 있다.

아는 만큼 볼 수 있는 이점이 있는 반면, 

아는 것만 보게 되는 맹점도 있다.

새로운 것을 바라보는 시각을

미리 차단해버릴 수도 있는 위험성이 있다는 뜻이다.

당연히 나는 그 말의 옳고 그름을 따져 보 하는 게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의 문제를 이르고자 함이다.

 

이런 태도는 내가 나름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뻔뻔한 태도에 대한 변명이기도 하다.

아무 것도 몰라도 눈에 보이는 게 있기 마련이니 말이다.

 

내가 포도호텔에 내리며 받은 첫인상은 포근함이다.

한라산 중턱에 자리한 포도호텔은 단층 건물이므로

주변의 경관에 폭 안겨 있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자세를 한껏 낮추고 지붕을 보아도

건물은 뒷 산의 허리에도 훨씬 미치지 못했다.

 

자연 안에 있으되,

자연을 넘어서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존재하고 있음을

건축가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건물을 보며

건축가인 이타미 준과 비로소 첫인사를 나눈 셈을 쳤다.

 

건물은 높은 곳에서 보면 포도의 형태를 띄었다고 하는데

까닭을 짐작해 보려 해도

내 빈약한 안목으로는 아예 어림이 불가능했다.

 

호텔의 안 쪽은 

포도송이의 줄기처럼 생긴 길따라

곧고 휘어진 모습으로 이어져 있는데

마치 실내에서 제주 고유의 올레길을 걷는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그 길을 걸으며

건물 안에서도 자연과 분리되지 않고

자연 안에서 걷고 있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것은 중간 중간 벽을 열어둔 채

자연을 건물 안까지 초대한 건축가의 자상함 때문이다.

 

뮤지엄이나 화랑이 아닌 호텔에서

이런 따스함과 자상함을 느끼기가 쉽지 않은데

나는 포도호텔에서 집이나 가족에게서나 받을 수 있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대접을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연 안에서

엄마 품에 안겨 숨 쉬고 

응석을 부리는 아기와 같은 

편안함을 맛 볼 수 있음은 

오로지 건축가의 정감 어린 마음 때문이라 나는 믿는다.

 

그것은 방 안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미닫이로 된 유리문과,

유리문 안에 있는 나무로 된 쉐이드를 옆으로 밀면

제주의 바람과 억새, 그리고 먼 산이 방 안으로 밀려 들어 오는데

방을 지나 나무로 된 옷장 문을 열고

욕실로 통하는 나무 문까지 밀치면

욕실 안까지도 자연은 스스럼 없이 찾아 와 손을 흔든다.

지금 쯤이면 유채꽃 노란 빛이 방 안에 가득 차 있을지도 모르겠다.

 

숙박비가 결코 가볍지 않았음에도

(나는 아내에게 굳이 가격을 묻지 않았다. 

일생에 한 번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것 아닌가?.)

방문할 때마다 점점 색이 바래 가는 제주의 신화는

제주의 동요, 혹은 자장가로 다시 태어 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오로지 포도호텔이 주는

자연과 인간이 결합될 때 나타나는 

모성을 간직한 포근한 치유력 때문이 아닐까 한다.

 

호텔을 찾는 손님들에게

다른 음료와 함께 냉장고 안에서 우릴 맞던

한라봉의 달콤한 귤 맛도

포도호텔에 머문 시간을 떠 올릴 때마다 입 속에서 다시 살아 

나의 침샘을 자극할 것 같다.

(여름에는 한라봉 때신 포도를 준비할까?)

 

 

 

 

불이 켜져 있는 방이 우리가 머물렀던 곳.

제주의 특색있는 풍경 중 하나인 돌담,

억새,

그리고 평지에는 이미 핀 유채 몇 그루가 문을 열면 보인다.

멀리 산방산은 미세먼지 때문에 유령처럼 희미하게 보였다.

 

 

 

 

 

여기는 호텔 입구.

지붕이 포도 송이의 꼭지에 해당한다.

 

안에서 보면 볼록하게

밖에서 보면 오목하게 

담장 같이 생긴 구조물이 있다.

 

언 데 풍경이 깔때기처럼 생긴 이 곳에 모아져

유리문을 통해 호텔의 복도까지 이어진다.

 

자연과의 소통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교감이라고 해야 하나.

 

 

 

보통의 가정처럼 

호텔 앞에는 항아리가 있는데

그 안에는 자갈 같은 것으로 채워져 있다.

 

제주의 바람 때문일 것이다.

 

 

 

 

 

포도호텔이라는 이름에 맞는 포도 문양

 

 

 

 

호텔의 로비에서 본 바깥 풍경.

그리고 호텔의 모형

 

 

 

 

 

우리 방 입구

 

 

 

욕실.

지하 수 천 미터에서 퍼 올린 온천수로 목욕을 할 수 있다.

오른 쪽 나무문이 옷장.

옷장 문을 열면 열면 침실이다.

욕실 천장도 나무로 되어 있다.

 

 

 

 

자연이 바로 곁에 있다.

 

 

 

 

 

 

침대 위에 걸려 있는 그림.

 

 

 

 

호텔 안에서 볼 수 있는 정원

자연 모습 그대로이다.

얼마 있으면 꽃들이 피어날 것이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높이로 격자무늬 창호지 문이 정원을 가리고 있다.

 

 

 

안과 밖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자연과 건물의 소통, 혹은 교류가 이루어진다.

 

 

 

 

화가의 이름은 잊었다.

호텔의 바닥을 그렸다고 한다.

로비에도 이 화가의 포도 그림이 있는데

너무 강한 빛이 반사되어 사진을 찍지 않았다.

 

육사의 시 '청포도'를 그림 속에 써 넣었다.

 

 

 

 

호텔에 딸린 식당.

유리를 통해 바깥 풍경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다.

 

 

 

 

 

 

지하의 갤러리

 

 

 

 

 

 

 

사진 왼 쪽에 어렴풋이 산방산이 보인다.

윤곽마저 흐릿하다.

 

 

 

 

 

 

 

로비의 화장실

사인마저 작품이다.

돌 하루방과 물허벅을 인 여인의 모습

 

 

 

먼 데 풍경이 이 복도를 따라 길이 꺾이는 곳까지 따라온다.

 

 

 

천장.

 

 

 

내가 주목한 곳.

 

바닥에 자갈이 깔려 있는데

흰 색과 검은 색으로 나뉘어 있다.

그것을 가르는 부분이 태극 문양이다.

 

지붕에는 원형으로 구멍이 뚫려 있는데

해가 직각으로 비추면

자갈 위에 둥근 태극 모양이 생겨난다.

(날이 흐려서 상상만 했다.)

 

땅과 하늘의 조화.

 

이 앞에 서서 나는 전율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건축가의 한국에 대한 마음과 만났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그런 나를 보고

그도 기뻐했을까?

 

백아와 종자기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물론 유리에 부딪치지 말라는 표시인데

어느 화가의 작품이란다.(백남준)

뜸북새인데 멸종된 것으로 알았던 이 새가

자기네 호텔 어디선가 발견되었다며

호텔의 친자연적인 면을 은근히 광고하는 그림이다.

 

 

 

 

 

 

 

 

 

 

 

벤치.

휘어진 나무의 특성을 고스란히 살렸다.

 

나무의 시간.

 

 

 

 

 

 

유리를 통해서이지만

바깥의 빛이 실내로 들어 온다.

하늘이 뚫려 있어서 비가 오면 실내에서 빗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나무와 풀은 그 물을 빨아들인다.

 

 

 

 

 

실내와 실외를 가르는 유리벽.

그 틈새로 물이 흐르고 공기가 통한다.

안과 밖이 다르지 않고

인간과 자연이 하나된 모습.

 

 

 

 

 

 

 

 

식당.

물 잔에 비친 앞 산.

나는 산을 마셨다.

 

 

 

 

숙박하는 손님에게 제공되는 아침 식사.

모든 음식이 정갈하고 맛나다.

제대로 대접 받는 느낌.

 

내가 참 귀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두 끼 식사.

 

양식과 한식 모두 훌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