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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들 이야기

우산 장수아들, 소금 장수 아들

걱정도 팔자 - 우산 장수 아들, 소금 장수 아들




-작년 내 생일에, 그 날 아들은 뉴욕 주 변호사 시험 합격 소식을 내 생일 선물로 주었다.-



"요새 바쁘니?"


"내일 아침 9 시에 싸인을 하는 계약 건 때문에 바빠요.


어제 아침 출근하며 세탁소에 들린 아들과의 대화다.

그러면서 아들은 그 거래 계약의 액수가 몇 빌리언 달러라고 했는데

나로서는 애시당초 계산이 불가능한 액수였다.


우리 아들은 Law School을 졸업한 후로

우리 아파트 아래 층에 살고 있으며

지하철(지하철이지만 지상에 있는) 역 바로 아래에 있는

우리 세탁소는 출근길 참새의 방앗간 같은 곳이여서

매일 출근길에 들린다.


큰 아들은 출근을 하면서

나에게 과일과 야채를 갈아 만든 스무디 한 잔을 건네며 일과를 시작한다.

스무디를 나에게 만들어 주는 일은 

작년 10 월 15 일부터 일을 시작하며

다른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빠짐 없이 반복한 일이다.


위대한(?) 내가 아들이 만들어 주는 스무디 한 잔으로

아침을 대신하는 일이 처음엔 쉽지 않았지만

이제는 습관이 되어서인지 견딜만 하다.

아들의 스무디는 영양가는 있으면서도

체중 증가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멀리 있을 땐 몰랐는데

아들이 가시거리에 들어오면서

걱정거리까지 함께 묻어왔다.


아들이 입사한 지 한 두어 달 동안은

별로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냥 설렁설렁 직장을 오가는 것 같아서

적잖이 마음 고생을 했다.


자본주의의 정점에 있는 나라인 미국, 

그것도 뉴욕에서

고액 연봉을 받으면서

저리 설렁대고 있는 것이 아빠의 눈에는 영 불안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은 걸 알면서도

혹시 능력이 부족해서

일에서 제외되고 있는 건 아닌지,

아니면 상사의 눈에 벗어나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안 해도 좋을 걱정이 마음 속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던 걱정은

크리스 마스 전후로 해서

다른 종류의 걱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작년에 크리스 마스를 맞아 

호텔을 빌려 해병대에 있는 막내 아들까지

온 가족이 2 박 3 일을 보냈는데

큰 아들은 틈틈이 자기 노트북을 가지고 일을 하기도 하고

방 문을 걸어 잠그고 Conference Call을 하기도 했다.


낌새가 좋지 않다 싶더니

2 주 전에는 새벽 3 시 반엔가 집에 돌아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제는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갔더니

아내가 "오늘 준기가 집에 들어오지 못할 것" 같다는 

소식을 들려 주었다.


처음 일 시작했을 때의 상황에 비추어 보면

분명 기뻐해야 하거나

적어도 걱정 하나는 가볍게 사라져 주어야 함에도

오히려 새로운 걱정거리가 늘었다.


무엇보다도 아들의 건강이 걱정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일을 부리는 회사의 갑질(?) 때문에

은근히 걱정거리 위에 적개심이 하나 더 얹어졌다.


이래도 걱정,

저래도 근심을 하는

나야말로 걱정이 팔자인 사람이다.


우스개 소리의 주인공이 생각난다.

아들 둘을 둔 아버지 이야기다.


아들 하나는 우산을 팔고,

다른 하나는 소금을 팔았다.


그런데 이 아버지는 

날이 맑으면

우산을 팔지 못하는 아들 때문에 걱정을 하고,

비가 오면

소금장수 아들의 소금이 젖을까 근심을 했다는  이야기인데

내가 꼭 그 아버지를 판 박았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 할 것이다.


날이 맑으면 소금 안 젖으니 좋고,

비 내리면 우산 장수 아들 돈 잘 버니 좋지 않냐고.

이래저래 다 좋으니

날마다 좋은 날 (일호 우일호)이 아니냐고.


그런데 말이야 쉽지

노력해서 잘 되면 오죽 좋으련만

마음 먹은대로 풀리지 않는 것이 세상의 이치가 아닌가.

마음 돌려 먹기가 세상 뒤집는 것과 같이 어렵다.


아들은 보통 아침 8 시 30 분에 세탁소에 들린다.

아침 인사를 주고 받으며

스무디가 내 손에 건네지는 게

아들과 나 사이에 그려지는 아침 풍경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 그 평범하고 기계적인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

아침 9 시가 되었는데도

아들의 세탁소 출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래 층의 아들이 어제 밤 집에 들어오지 않은 것이

거의 확실하다.


걱정이 팔자인 나에게

아들의 건강 걱정에 

아들표 스무디 마저 없는 오늘 아침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하는

현실적인 걱정거리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아들의 출현과 스무디 한 잔.


그 평범한 일상의 반복이 행복이라는 것을

오늘 아침 주린 배를 움켜 잡고

뼈저리게 깨닫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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