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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생일, 생일 선물

생일, 생일 선물





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아내가 생일상을 차려 주었다.

해물 파전, 된장찌개, 묵무침과 생선전과 호박전 등등의 반찬에

아주 맛 있는 미역국이 메뉴였는데

요즘 아내의 콘디션을 고려하면

좀 무리를 했다 싶을 정도였다.


아래 층에 살고 있는 큰 아들과

셋째 딸이 하객의 전부였다.

최근 이렇게 단촐한 생일은 아마 최근 20 년 중 처음일 것이다.


지난 일요일 쉐난도 국립공원에서 돌아 오는 길에

아내는 차 안에서

아이들에게 뜬금없이 메세지를 보냈다.


앞으로 엄마 아빠 생일은 챙기지 말기.

어머니 날과 아버지 날만 기억해주면 좋겠다.


9월 1 일, 자기 생일(환갑)은 다 챙긴 후

어제 맞는 내 생일은 잊어라?


그러지 않아도 집안 대소사에 

적잖은 시간을 많이 할애해야 하는 아이들을 고려한

아주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했지만

하필이면 내 생일을 코 앞에 두고

그런 지시를 내린 것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올 해까지만 예전처럼 하고 

내년부터 시행하라고 했으면 

이렇게 허전하고 낭패스러운 기분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무얼 어찌 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집의 입법, 행정, 사법 3권은

철저히 아내에게 집중되어 있으니

(내가 최고 존엄이라 부르는 까닭이다.)

아내 입에서 말이 떨어지면 

말 그대로 마침표를 찍는 것이어서

무슨 청문회며 탄원서 같이 

억울한 심정 같은 걸 토로할 

아무런 법적 제도적 장치가 없는 것이 참으로 한스럽다.


사실 예전에 아이들이 주머니를 털어 내 생일 선물을 할 때

마음이 그리 편치 않았는데

그리하지 않아도 되니

한 번 더 생각하면 아내의 제안은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그런데 손에 잡히는 선물보다

보이지 않는 선물에 생일 아침에 전달되었는데

큰아들의 뉴욕주 변호사 시험 합격 소식이었다.


이미 이 달 15일부터 Law Firm에 출근하고 있는 아들에게

시험 결과에 대한 마음의 부담이 가셨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큰 아들은 5월에 Law School을 졸업한 뒤,

7 월에 시험을 보고 

내 생일에 시험결과를 받은 것이다.

아빠로서 그보다 더 훌륭한 생일 선물은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우리 부부에게

큰 기쁨이 된 것은 변호사 시험 합격보다도

앞으로 틈 나는 대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법률 서비스를 하겠다고

밝힌 것이었다.

저녁 식사도 마치고 생일 케익을 먹으면서

자기 마음을 드러냐 보인 것이다.


돈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를, 이웃을 위해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는

법률가가 되라는 말을 기회 있을 때마다 해 왔던 터였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아들을 위한 재정적 지원은

투자한 돈을 회수하는 투기가 아니라

좀 더 밝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투자한 것이라는 생각은 

정말 내게 살아가는 기쁨이 되고

내가 받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을 받았다는 뿌듯함을 내게 안겨 주었다.


내 생일에 오지 못한 다른 아이들도

자리행과 이타행을 잘 비벼서

아주 조화롭게 살면 좋겠다.


아이들 모두 그런 생각으로 산다면

매일매일이 내 생일이고

생일 선물을 받으며 사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촛불하나는 내 생일 축하,

다른 하나는 아들의 변호사 합격 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