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의 음악인 BTS(방탄 소년단)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한국어로 된 가사로 노래를 하는데도
전 세계의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노래에 열광을 한다고 한다.
더군다나 방탄 소년단이 부르는 노래 가사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한국말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늘고 있다고 한다.
ARMY라고 하는 팬그룹들은
방탄 소년단을 알리고 보호하기 위해
군대보다 더 강하고 조직적인 활동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3 조에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고
적혀 있지만
문화나 사랑이 번질 수 있는 경계는
문명이 이르는 곳이면,
지구 어느 곳이나 사라졌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달 전인가 둘째 딸이
친구인 브리엘이 보낸 사진을 보여 준 적이 있다.
브리엘은 둘째 지영이의 소꼽친구로
체코인가 슬로바키아 출신의 남편과 결혼해서
아이들 셋을 키우며 살고 있는데
어느 날 자기가 담근 김치 사진과 함께
동구 출신의 남편이 김치 먹는 사진을 곁들여 보낸 것이다.
1984 년, 내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
김치는 그야말로 혐오식품이었다.
일제 강점기 시대의 태극기처럼
김치는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게
집 안에서 몰래 먹어야만 했던 눈물의 음식이었는데
마늘이 들어간 한국 음식은 김치처럼 다 혐오식품 범주에 들었다.
아이들 학교 모임이나 공식적인 행사에 갈 때에는
아내는 전 날부터 나와 아이들에게 단속을 시켰다.
식단에서 마늘이 들어간 음식이 제외되었으며
마늘 냄새를 제거하기 위한 양치질과
목욕재계도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했다.
아내는 개띠인데
코와 귀의 능력은 개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이다.
그런 아내의 검사를 받고서야
그런 모임에 갈 수 있었다.
애물단지 같던 김치가 그 위상을 달리 하기 시작한 것은
4-5 년 전부터이다.
세탁소 손님 중에,
아니면 지나던 행인들(물론 미국인)이 찾아와
"안녀하세요?"하며 서툰 한국말로
어디서 김치를 구할 수 있냐며 묻는 것이 일상의 풍경이 된 것이다.
그들에게 우리 집 김치를 한 포기라도 내어 주면
큰 절이라도 할 것 같은 태도다.
김치는 한 번 맛본 사람이면
중독성 있는 맛에다 건강식품이라는 매력까지 곁들여진
치명적인 음식이라는 걸 부정하기 힘들다.
김치 사진을 보내며
브리엘은 아내에게 자신의 한국 이름을 지어달라고 청했다.
아내는 흔쾌히 '화영'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우리 아이들 이름의 끝 자인 '영' 돌림에다
꽃 '화'를 더 해 '화영이라는 이름이 생겨난 것이다.
딸아이의 친구가 한국 이름을 지어 달라고 청한 것은
브리엘이 처음이 아니다.
한국이름을 처음으로 청했던 아이는
셋째 딸 선영이의 친구이자
선영이가 소했던 목관 5 중주 팀원인 소피였다.
선영이가 솔해 있던 목관 5 중주 팀 'Arabesque'가
맨해튼에서 열리는 실내악 국제 콩쿠르에 참가하기 위해
우리 집에 며칠 머문 적이 있었다.
그때 소피는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아내에게 한국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해서
'가영'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집 비공식 호적에 올랐다.
(Arabesque는 그 대회에서 대상을 받아 카네기 홀 공연을 했다.)
두 번째로 우리 집 호적에 오른 아이는 큰 딸 친구인 Celina(설리나)인데
가 다음인 '나영'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나영이는 워낙 한국 음식을 좋아해서
이태리에 유학하던 중,
크리스마스 때 미국에 오면 우리 식구 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냈는데
육개장을 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모두가 서양 음식을 먹고 있는데
이탈리아 계 미국인인 Celina만
독상을 받아 홀로 육개장을 먹는 진풍경이
우리 집에서 연출되었다.
그리고 최근에 브리엘이 '화영'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집 호적에 올랐다.
그리하여 우리는 딸 셋에,
또 딸 셋을 더 두게 되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한국 이름을 갖기 원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내 추측으로는
한국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는,
사랑스럽고 따뜻한 우리 집 분위기가
좋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식구와 둘러앉아
함께 밥 먹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였을 것이다.
(실제로 세 아이 중 둘의 부모는 이혼을 했다.)
방탄 소년단이 만들어 내는
엄청난 에너지를 보고 들으며
문화와 사랑의 영토는 그 경계가 없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민들레 꽃씨의 영토가 바람이 부는 곳 까지라면
사랑과 문화의 영토는 어디가 끝일까?
최근 우리 호적에 이름을 올린 '화영'이와
그 아이가 만든 김치,
그리고 그것을 맛있게 먹는
슬로 바키아 출신 화영이 남편을 생각하며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마음의 옷깃을 여미고 있는 중이다.
-사족-
5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갈 일 (절대로) 없다던 태도를 갖고 있던
둘 때와 셋째 딸, 그리고 막내아들이 이 번 주말에 한국에 가서
이미 가 있는 아내와 합류할 예정이다.
한국인 가정에 태어났다는 막연한 열등감이
우리 아이들에게 있(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김치 때문에,
한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는 이유 때문에
얼마 정도 자격지심을 가지고 살던 아이들이 한국에 갈 마음을 먹은 것은
어느 순간부터
부모의 나라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이 생긴 것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 같다.
요즘 혼자 먹는 밥이 외롭지 만 않은 까닭이다.
-작년 내 환갑에 캘리포니아 Malibu에 모인 우리 식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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