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이 주일 동안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주된 여행의 목적이
국민학교(요즘 초등학교라고 하지만 우리 다닐 때는 누가 뭐래도 국민학교였음) 동창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기에
가고 싶어하는 아내와 나 사이에 차가운 기류가 흘렀음은 불문가지의 사실이죠.
동창이라고 해도 여자들보다는 남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더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내가,
아내를 쉽사리 보내줄 마음이 들지 않더라구요.
우여곡절 끝에 아내는 한국행을 결행했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남자 동창들이 마치 선이라도 보듯이 정장을 하고 공항에서
현수막까지 내걸고 아내를 맞았다는군요,
글쎄. 그런데 그 숫짜가 스물이 넘었다는 소식도 들리는데,
이 미국땅에서 손 쓸 수도 없는 내 처지가 마치 여름날 한증탕에 앉아있는 것처럼
갑갑하고. 머릿는 지끈지끈 아파오더군요.
세상에 그런 소식 듣고 태연한 남자 있으면 성인이나, 바보 둘 중의 하나일 겁니다.
이거 아차 싶더군요,
그러나 물은 이미 엎질러진 걸 어쩝니까?
게다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 있으니------
정신 차리고 사태를 수습해야할텐데, 도무지 머릿속은 엉킨 실타래 그 자체였습니다.
그 많은 남자 동창들과 경쟁을 하기 위해서 뭔가 해야할 것 같았습니다.
결국 머리를 짜고 짜서 생각해낸 것이 얼굴에 생긴 숱한 점들을 빼는 일로 잠정 결정되었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아내는 내가 목욕탕에서 갓 나온 남자같다는 말을 해주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옳지! 내가 그들과 경쟁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외모이며 주름도 있고. 좀 삭기는 했어도
점들만 빼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실수를 하나 했는데 그것은 정말 치명적이었습니다.
이 일 저 일로 거사일을 미루다가 아내가 돌아오기 닷새 전에 감행했는데, 너무 늦은 겁니다.
본래 점 크기의 서너 배는 족히 되는 크기에다가 짙은 먹물처럼 꺼먼 시술부위는
완전히 내 얼굴을 야수로 만들어놓고 말았습니다.
후회해도 소용없고, 아내에게 냉대받을 일이 두려워 그나마도 끼니 때우기가 힘든데 입맛마저도 사라졌습니다.
돌아올 아내와 마주칠 일이 두려웠습니다.
목욕탕은커녕 탄광에서 갓나온 야수의 모습---그게 바로 나였습니다.
드디어 운명의 날, 상태는 전혀 호전되지 않고, 근심걱정으로 뜬 눈으로 지새운 탓인지
얼굴은 더 초췌해진데다가, 못먹고 지쳐서 피골이 상접한 내 모습은 완벽한 야수, 그 자체였습니다. .
공항에 마중 나왔던 남자 동창들의 모습과는 남극과 북극처럼 영 거리가 멀었습니다.
아! 그러니 어쩝니까, 운명마져 내 야수같은 얼굴에서 자신의 얼굴을 돌리는데,
어찌 아내라고 예외일 수가 있겠습까?
아내가 탄 비행기가 도착하고, 아내가 짐을 찾아 나오는 시간이 삼십여 분,
그 시간이 아내가 한국에 머문 이 주일 보다도 더 길게 느껴졌습니다.
마침내 아내와 조우하는 순간, 아내의 입에서 짧은 외마디 신음이 새어나왔습니다.
친구들 만나서 잘 먹고 잘 놀다가 물이 오른 미녀가 되어 돌아온 아내는
내 흉칙한 외모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야말로 미녀와 야수의 만남이라고나 할까요?
나는 겨우 들어가는 소리로 “당신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하고는 말꼬리를 접었습니다.
물론 아내의 남자 동창들보다 더 잘난 모습을 보이려고 그랬다는 말은 쏘옥 뺐지요.
나도 그 정도의 눈치는 있다구요.
아내는 자기한테 이쁘게 보이려다 사고친 걸로 받아들인 것 같아요.
그러니 그 정성에 감복해서인지 나를 안고 입을 맞춰 주더군요.
그 순간 마법이 풀렸나 해서 옆눈길로 공항의 유리에 비춰 보니 웬걸 그대로지뭐예요.
어쨌든 아내는 내 흉칙한 외모 밑에 있는 아름다운 왕자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나를 위해서도 또 아내를 위해서도 참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지요.
며칠 후면 아마도 마법이 풀리고 아름다운 왕자로 다시 태어날 겁니다.
미녀인 아내와 사랑하며 오래왜 행복하게 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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