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 내리는 날의 일기
오늘 새벽 겨울비가 내렸다.
어젯밤 현관으로 오르는 계단을 밟으며
하늘을 보았는데
구름 저 뒷편에 무슨 조명이라도 있는 것처럼
하늘이 환히 밝았었다.
그러더니 밤새 눈이 내렸고
새벽에 출근하려고 밖으로 나오니
눈은 이내 비가 되어 이미 쌓인 눈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난 로스트로포비치가 연주하는 바하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를 듣는다.
오래 전에 음반을 사놓고
원반은 집에 모셔둔 채
복사한 걸로 차 안에서 듣는다.
혹시라도 작은 상처라도 나서
다시는 못듣게 될까 겁이 나는 까닭에서 이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 개념에는 영 어긋나는 일이기는 하지만,
이 음반 하나만은 두 벌씩 소유해서 죄가 된다 할지라도
이런 나의 탐욕을 다스릴 재간이 없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둔 길을 운전하며 생각 속으로 깊이 빠져들곤 한다.
"나는 무엇이기에 이 비오는 새벽에 혼자 길을 가는 것일까?"
홀로 가는 길에 이처럼 비가 내리면
깊은 존재의 고독감 속으로 가라 앉는다.
이럴 때 바하의 무반주 첼로는
비오는 새벽길의 기꺼운 동무가 되어준다.
로스트로포비치 자신도 바하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를
연주할 때는 자신을 위해 한다고 했다.
자신의 근원적인 고독과 만났을 때의 그 느낌이
그리도 깊은 떨림으로
내 영혼을 오슬거리게 한다.
아마 바하도 이 곡을 쓰면서
자신의 깊이 모를 존재의 고독감을 노래하지 않았을까?
첼로의 깊은 떨림이
내 고독의 떨림과 만난다.
고독한 존재와 존재가 만나서
위로하고 위로 받는다.
차창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면서
고독한 존재들이 열반에 들면서
남긴 투명한 사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심길로 들어서면서
차창 위의 빗방울은 신호등이나 앞차의 불빛을 받아
때론 빨간 색으로, 때론 초록색이나 노란 색으로
물이 들곤 한다.
빨간 눈물,
초록 눈물,
그리고 노란 눈물.
눈물이
아니 고독의 빛깔이
참으로 화려하기도 하다.
혼자 가는 나의 여정에
첼로 소리와
화려한 빛(빗)방울이 함께 한다.
그 빛방울이 없어지는 것이 안타까워서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 되어서야
겨우 와이퍼를 움직여 빗방울을
털어버리곤 한다.
내 차에 떨어지는 모든 빗방울이여
너희들을 사랑한다.
아주 찰라이긴 하지만
"안심하라. 안심하라"
그러고 보면
이 비내리는 새벽에
나만이 홀로 길을 가는 것은 아니다.
오늘 저녁
이 비가 그치고 나면 국수가 먹고 싶어질 것이다.
따뜻한 국물로
허기진 속뿐만 아니라
허허로운 내 존재의 고독감도
언 몸 녹듯 그렇게 풀고 싶다.
오늘 저녁,
나는 그대와 함께
국수를 먹고 싶다.
못먹는 술이지만
소주 한 잔 곁들이며
내 붉어진 낯빛처럼
이 어둡고 추운 겨울밤
노을처럼 뜨겁게 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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