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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아이들 없는 아버지 날




우리 아이들 다섯 -둘째 지영이 결혼식 때


일요일 아침 축구를 마치고 돌아오면

아이들이 굽는 시나몬 케익의 향기가 집안에 은은히 퍼졌다.

그리고 아이들이 준비한 브런치를 먹고

다섯 아이들이 연주하는 목관 5중주를 감상 하는 것이

우리집 아버지 날의 전형적인 풍경이었다.


그런데 막내 아들이 해병대에 간 후로는

아이들 전부 모이는 아버지 날은 맞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올 해는 아이들 하나 없는

아버지 날 아침을 맞을 것 같다.


슬프지 않냐고?


아니 정반대로 행복하다.


미국의 아버지 날은

6 월 셋째 일요일이다.


모레가 아버지 날인데

아이들은 모두 아버지를 등지고 New Orleans로 떠났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이들이 

마치 아버지 날을 보이콧을 한 모양새가 되었다.


우리집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내 대신 우리 아이들에게 화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괘씸한 녀석들이라고 열을 낼 지도 모르겠다.


아이들 때문에 New Orleans로 떠나길 주저하는

큰 딸의 등을 떠민 건 아내였다.

주말에 아이들을 봐 줄 테니 맘 편히 다녀 오라고 분위기를 띄웠다.


이렇게 아이들 다섯이

모두 New Orleans에서 아빠 떠나서

아버지 날을 맞을 것 같다. 


아내까지 가담해서

아이들 없는 아버지 날을 맞게 한

우리집 식구들의 패륜적 행태를 어찌 설명을 해야 할까?


그런데 아이들이 다 떠나고 없는

텅 빈 아버지 날 아침을 맞아야 하는 나는

오히려 가장 행복한 아버지 날을 맞을 것 같다.


이유가 궁금하지 않은가?


나는 아이들 없는 아버지 날을 맞을 생각에

벌써 행복한 기분에 푹 젖어 있다.


내가 아이들에게 미리 해 둔 유언이 있다.


그것은 형제들끼리 서로 잘 지내라는 것이다.


"엄마 아빠와 이 지상에서 살 날보다

형제 자매끼리 지내야 할 날들이 훨씬 많으니

아빠 엄마와 친하게 지내는 것보다

형제들끼리 더 잘 지냈으면 한다."

는 것이 나의 단 하나 뿐인 유언인데

미리 가불해서 아이들에게 한 것이다.


미리 유언도 해 놓았겠다

죽을 때는 말 없이 그냥 떠나면 되니 더 이상 홀가분할 수 없다.


New Orleans에는 막내 아들이 있다.

South Carolina에서 DI 직분을 마치고

새롭게 배치된 곳이 바로 New Orleans다.


집에 올 수 없는 막내를 만나러 가기로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아이들 모두 마음을 모아 결정을 했다.


모두가 바쁜 시간을 쪼개서

이우러 내는 만남이 즐겁고 행복할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엄마 아빠 보다도 형제 자매들끼리 잘 지내라고 한

나의 유언이 벌써 실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만드는지 모른다.


아이들 없이 맞는 아버지 날 아침


내 삶의 가장 아름답고 귀중한 선물이 될 것 같다.




위의 사진은 지영이 약혼식 때 찍었는데

군대에 간 막내가 없다.

셋째 선영이가 막내 빈 자리에 어깨동무를 하듯 팔을 둘렀다.

아이들의 막내에 대한 마음씀씀이가 보인다.


아래 사진은 막내가 휴가 나왔을 때

다시 그 자리에 가서 

다섯 형제 완전체로 다시 사진을 찍었다.


내가 아이들을 보며 감동하는 이유다.


다음 사진은 New Orlea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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