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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주말일기 4 - Provincetown

등대를 떠나 Provincetown으로 가는 길은

해가 수평선을 향해 서서히 떨어지고 있을 때였다.

목표 지점을 얼마 남기지 않았는데

바닷가에 작은 오두막 집이 줄을 지어 있는 것이 보였다.

 

20 년도 더 전에 이 곳을 찾았을 때도 저런 집들이 있었음을 기억해 냈다.

여름 한 철 바닷가를 찾는 사람들에게 빌려주는 집인 것 같은데

우리가 갔을 때는 창문을 판자로 막아 놓아 놓았고

사람도 보이질 않아 마치 유령들이 사는 곳 같이 

으스스한 기운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것 같았다.

 

차에서 내려 바다를 보니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었는데

수평선 부근에 노란빛이 살짝 보였다.

 

막 해가 질 무렵인 것 같았다.

 

다시 차를 타고 육지의 끝을 행했다.

육지의 끝(곶)에는 커다란 바위돌로 쌓은 축대가 바다를 행해

길게 이어졌는데

그 끝에 키 작은 등대가 있었다.

거기까지 가고 싶었지만

내가 입은 옷으로는 바다바람과 추위를 막아낼 수 없어서

중간에 돌아 왔다.

카메라를 든 손이 얼어 오는 것 같았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카메라를 날려버릴 것 같은 바람이 무자비하게 불어댔다.

 

아내는 차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방파제 같은 둑에 배 한 척이 좌초된 형상으로 기대어 있었다.

사람들은 띄엄띄엄 그곳까지 가서 사진을 찍고 이내 발길을 돌렸다.

너무 춥고 바람에 세서

바람에 쓸려 바다에 떨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함이 

방파제 위에 존재하고 있었다.

 

배 주변에서 한 젊은 연인을 만났다.

두 사람은 내가 거기 가기 전부터 해가 지는 곳을 향해서 있었는데

내가 돌아와 차에 날 때까지 그렇게 말없이 수평선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

 

'사랑은 둘이서 한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쌩떽쥐베리가 그랬다지?

 

그들은 그 말을 따라 살기로 연습을 하는 것 같았다.

마음속으로 두 사람을 축복했다.

 

둘이서 한 곳을 바라보며

두 사람의 삶의 저녁이 올 때까지 함께 걸어가길----

그래서 지금의 풋풋함이 

시간 속에서 잘 발효하길,

 

그리하여 사랑의 깊은 맛이 우러나기를.

 

나는 아내가 기다리는 차로 서둘러 돌아왔다.

등대까지 가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그 아쉬움 때문에 그 등대는 내게 오랜 그리움으로 남을 것이다.

 

처음에 도착했을 때는 잘 보이지 않던

등대의 불이 보이기 시작했다.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온 것이다.

이제 바다는 파도 소리와 등대의 불빛만이

깨어서 바다에 남아 있을 것이다.

불빛과 파도 소리의 듀엣.

 

우리는 아내가 3 년 전에 폭설을 뚫고 혼자 와서

식사를 한 'Napi's'라는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그 작은 마을의 식당에 휴가철도 아닌데

사람들이 북적대는 것이 뜻 밖이었다.

단체 손님들도 꽤 되는 것 같았는데

식사를 끝내고 돌아가는 사람들 손에는

남은 음식이 든 봉투를 든 것이 눈에 띄었다.

 

이유는 물론 주문한 음식을 다 먹지 못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맛이 없다면 굳이 음식을 싸 달라고 하지 않고

미련 없이 자리를 툭툭 털고 나올 것이다.

"다시는 내가 여기 오나 봐라."라고 투덜거리면서 말이다.

 

음식 봉투를 들고 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이 식당의 음식이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으니

나의 총명함이 보이지 않는가?

 

식당 안은 가장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손님에게는

음식을 공짜로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로 경쟁하듯 사람들은 소리를 높여 떠들고 있었다.

(이야기가 아니라 거의 고함을 쳤다.)

 

우리가 앉은자리 가까운 곳에

바가 있었는데 

성모 마리아와 예수, 그리고 십자가 문양이 들어간 

스테인드 글라스를 배경으로'그 앞에 온갖 술이 진열되어 있었다.

바텐더가 손이 열 개라도 부족한 듯

바쁘게 칵테일을 제조하고 있었다.

 

스테인드 글라스의 그림은 

사람들과 술만 뺀다면

마치 이 곳이 성당 안인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할 정도로

성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한국에서 흔히들 농담으로 '주님을 영접한다'는 말이

이 곳 Cape Cod의 한 식당에서 통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웨이터와 웨이트리스들은 

식당 주인의 사돈의 팔촌 중 

나이 50 넘은 사람들을 다 불러 모은 것 같이

몸매며 머리 스타일 복장 등이

아주 허술하지 짝이 없어 보이긴 했으나

그들의 매너며 손님을 대하는 친절함과 부드러움은

이 식당을 활기차게 만들어 주는 이유 중 하나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거의 40 분을 기다리고서야 

비로소 우리가 주문한 음식을 대면할 수 있었다.

배고픔을 견딜 수 없는 한계치에 이르러서

만난 음식은 정말 맛났다.

 

그리고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왜 사람들이 거의 다 남은 음식을 싸가지고 돌아가는 지를.

음식의 양이 엄청났다.

맛도 있는데 양까지 많으니 

남은 음식을 포기할 수 없어서

알뜰히 챙겨가는 게 당연했다.

 

나는 해물 잡탕 같은 걸 주문했는데

조개며, 홍합, 새우와 랍스터 등등이

그릇 안에 풍성히 담겨 있었는데

특별히 대구 한 토막이 들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다른 식당(고급)에 가면 그 크기 대구 한 토막이

요리 하나로 간주될 정도의 크기였다.

 

이 곳에서 대구가 많이 잡히는 까닭으로

Cape Cod(대구 곳)이라는 지명이 붙은 걸로 알고 있는데

대구 한 토막은 요리사의 센스이자 통 큰 인심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었다.

 

나는 맛으로,

아내는 분위기로 음식을 먹는다.

우리의 식탁 위의 촛불은 불이 붙어 있지 않았다.

아내는 촛불을 원했다. 

웨이트리스에게 불을 켜 달라고 부탁을 했다.

로맨틱한 식사를 위해서 촛불을 밝혀 주십사고.

 

그 촛불이 아내에겐 로맨틱함으로

내게는 걸리적거림으로 식탁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살아가는 일이 그렇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한 상에서 

밥을 함께 먹는 일이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어둠은 불빛이 있는 곳 빼고는 

구석구석 스며들어 있었다.

 

어둠보다 깊은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작은 언덕 위에 있는 Pilgrim Monument의 불빛이 은은하게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 고단했던 항해의 여정을 위로라도 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