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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상처 - 빈 배가 될 수는 없을까?(축구장에서)

예전에 읽었던 글 한 편을 소개합니다.

장자에 나오는 글입니다.

 

장자 - 빈 배(토마스 머튼 번역) 

한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빈 배가 그의 배와 부딪치면 
그가 아무리 성질이 나쁜 사람일지라도 
그는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배는 빈 배이니까. 

그러나 배 안에 사람이 있으면 
그는 그 사람에게 피하라고 소리칠 것이다. 
그래도 듣지 못하면 그는 다시 소리칠 것이고 
마침내는 욕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은 그 배 안에 누군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러나 그 배가 비어 있다면 
그는 소리치지 않을 것이고 화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강을 건너는 그대 자신의 배를 빈 배로 만들 수 있다면 
아무도 그대와 맞서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그대를 상처 입히려 하지 않을 것이다. 

 

내 입술 안 쪽에는 은단 반 쪽 크기의 돌기가 두 개 돋아 있습니다.

10여 년 전에 축구를 하다 입은 상처입니다.

상대편 수비수와 몸을 부딪쳤는데

그 선수의 팔꿈치와 내 입술이 부딪쳤습니다.

아니 내 입술이 팔꿈치로 얻어맞았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입술 안 쪽이 두 군데 찢어졌고 피가 났습니다.

다행히도 이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상처 때문에 열흘 정도 잠도 편히 잘 수가 없었고

음식도 제대로 먹을 수 없을 정도의 고통 속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아마 그 선수는 지금까지도

나의 고통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좋아하는 축구를 그만하라고 할 것 같은 두려움에

아내에게 고통을 숨기는 일이 상처가 주는 아픔보다 더 힘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엔 상처가 아물면서 남긴 상처가

팥알 크기만 하던 것이

지금은 점점 줄어 들어서 거의 인식을 하지 못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육체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지만

마음에 남은 상처는 쉽사리 줄어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육신의 상처는 모래 위에 새겨진 글씨 같다면,

마음의 상처는 바위 위에 새겨진 글씨 같아서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장자의 빈 배 이야기에서처럼

우리는 각자의 배를 타고 가면서

다른 사람이 탄 배와

이리저리 부딪치는 숙명을 안고 살아갑니다.

 

때론 부딪친 일이 없는 것 같은 데도 상처가 남습니다.

반대로 내가 탄 배가

나도 모르는 사이 다른 배와 부딪쳐 

그 배에 상처를 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옛날에 스님들은 걸어 다니며

개미 같은 작은 생물을 살상할까 두려워

덜 촘촘히 짜인 짚신을 신었다고 하지요.

그래도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살생을 하게 됩니다.

 

내가 믿는 가톨릭 교회의 고백성사 마지막에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에 대해서도 통회하오니 사하여 주소서."라고

겸손되이 고백합니다.

내가 고백성사를 보며 

가장 힘주어 고백하는 것도 이 대목입니다.

 

우리가 육신을 지니고 태어난 이상,

빈 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의도하지 않았기에

법적으로 죄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상처와 아픔은 남습니다.

 

그 상처를 매만져 주고

아픔에 공감할 때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상처를 주고받았지만

서로 보듬어 주는 곳이 천국이고 극락입니다.

 

우리가 공을 차는 이 운동장이

교회고, 절이며

천국이며 극락인 것입니다.

 

이런 치유와 화해를 지상에서 경험하지 못 한 사람은

천국에서도 천국을 경험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오늘 나와 부딪치며

내 발에 밟힌 임마누엘,

정신없이 공을 쳐다보며 한 눈을 팔며 가던 내게

발을 밟힌 경로씨.

미안합니다.

 

욕심을 덜 부리고 양보했으면,

조금 주의 깊게 주의를 살폈으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다 내 잘못입니다.

 

용서해 주실 거지요?

 

이렇게 용서를 빌 수 있는 현재(Present)가

정말 선물(Present)이라는 걸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그대와 나, 우리 모두가 빈 배가 아닌 것이 다행스럽습니다. 부딪침을 통한 치유와 화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 편안한 밤이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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