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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미 해병대 훈련소 졸업식 스케치

지난 주 금요일에 해병대 신병 훈련소에 다녀왔습니다.

South Carolina에 있는 Parris Island에 훈련소가 있습니다.


우리 아들이 훈련시킨 신병들의 졸업식이긴 하지만

DI(Drill Instructor)로서 3 년을 근무한 

아들의 DI 졸업식이기도 했습니다.

3 개월 단위로 훈련 주기가 이루어지는데

7 번의 사이클을 끝내면 DI로 졸업을 하게 됩니다.


훈련병들과 같이 석달을 지내야 하기에

흔히 말하는 극한직업입니다.


막내 아들은 처음 훈련소에 입소해서 훈련을 받으며

어떤  DI를 보고 DI의 꿈을 키웠습니다.

막내는 DI가 되기 위해서 엄마 아빠에게는 알리지 않고

몰래 준비를 해서 기어이 자기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엄마 아빠의 바람이 아닌

자기의 꿈을 행해 달린 아들이 괘씸하기보다는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SDI(Senior Drill Instructor)가 되었습니다.

보통 DI는 국방색 벨트를 매는데

SDI는 검은 벨트를 매는 특권이 있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도

DI는 허리에 팔을 두르는데

SDI는 팔짱을 낍니다.


뭘 별 것 아니긴 하지만 자기들 사이에는 

그것이 무척 쿨한 것으로 여겨지는 모양입니다.


훈련병 1 개 중대에 4 개 소대가 있는데

각 소대에 SDI 한 명에

4 명의 DI, 

모두 다섯 명의 DI가 신병들의 훈련을 담당합니다.

한 중대에 20 명의 DI가 있는데

우리 아들과 같은 계급의(Sergeant,하사) DI가 7-8 명이고

나머지는 한 계급 더 높은 Staff Sergeant(중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 아들이 소대의 SDI인 까닭으로

그 소대의 DI는 전부 하사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한국 군대와 다른 점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막내가 담당한 소대의 성적이  

연대의 역대 기록을 세웠다고 하니

괜히 아빠의 어깨가 으쓱합니다.


가장 어린 나이에 DI가 되어서 3 년을 지내고

자기도 마지막인 일곱 번째 맞는

신병 졸업식으로 가 봅니다.





졸업식은 열병과 분열,

그리고 부대기 반납,

상장 수여 등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먼저 군악대의 환영및 축하 연주.




이 번 졸업생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 아들이 7 년 전에 졸업할 때의 

반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여자 해병도 없습니다.


연병장엔 장교가 하나도 없습니다.

훈련소 졸업생과

하(부)사관들 뿐입니다.


미국 군대가 하사관 중심이란 말이 실감납니다.


바로 옆에 별 하나를 단 훈련소장이 앉았는데

부대장에 대한 경례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변 사람들과 잡담을 하기에

그냥 장교인가보다 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가 훈련소장이었습니다.


헌병들 호위도 없이 슬그머니 와서 몰랐습니다.


나중에 분열할 때도

주임 상사와 함께 해병대 출신 민간인 한 사람이 함께

부대의 인사를 받았습니다.


훈련소장은 그저 참관하러 온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대대장이 졸업생 가족들에게 인사를 했는데

이 행사에 공식적으로 얼굴을 내 민 유일한 장교였습니다.






해병대의 마스코트인 불독이 등장해서

가족들에게 웃을을 선사했습니다.

말을 잘 듣지 않아서 더 웃겼습니다.




막내 아들이 선임 DI로 근무한 Platoon 1025







분열.




아들과 부대 주임 상사

군대 생활 36년 차라고 합니다.




맨 왼 쪽이 사령관.

군대 경력이 주임 상사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뒤에 담요를 두른 가족이 보입니다.


얼마나 춥던지 행사하는 동안 덜덜 떨었습니다.

내가 옷을 이상하게 입은 것도 다 그 때문입니다.


행사 중에는 옆에 앉은 꼬맹이에게 

내 자켓을 입으라고 주었습니다.

그 꼬마는 얼굴까지 푹 뒤집어 쓰고 추위를 견뎠습니다.


이런 행사에 빠지지 않는 것은

해병대나 군에 다녀온 사람들을 일어서게 해서

관중들에게 소개하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아낌 없이 박수를 보냅니다.


군인에 대한 존경은 미국 사회에서

일종의 불문율입니다.


내 앞에 어느 노부부가 앉았는데

그 분도 해병대 출신이었습니다.

국기가 지나갈 때는 모두 일어서서 경례를 하는데

그 분도 거수 경례를 하였습니다.


얼마난 춥던지 그 분의 손이 마구 흔들렸습니다.

미국 국기보다도 그 분의 손이 더 많이 

펄럭였습니다.


졸업생들이 경례를 할 때

손이 흔들리는 이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졸업생들과의 담소

그리고 사진 촬영.





아내는 일부러 빨간 구두를 신었읍니다.


빨간 구두 할머니입니다.


해병대의 빨간 색.

아들 정복 바지의 빨간 줄과 매치가 됩니다.


나는 파란 자켓을 입었는데

아들의 바지 색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 자켓은 7 년 전 아들이 훈련소 졸업할 때

이 곳에서 산 것입니다.


그냥저냥 사는 것 같아도

의미를 탖고,

의미를 부여하며 살고 있습니다.





아들이 속한 1 대대

브라보 중대 건물 앞에서 한 장.

여기서 3 년을 지냈습니다.



훈련병들의 내무반입니다.





훈련병들이 만들어 준 기념품을 들고 한 장





계급은 낮아도

SDI인 까닭에 막사 입구에 아들의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막사로 오르는 계단

페인트가 벗겨졌습니다.

많은 걸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드디어 DI 모자(Hard Hat이라고 합니다.) 반납식.


중대장과 중대 선임하사,

그리고 다른 DI들 모두 참석했습니다.


행사를 하는 동안 중대장도  

조금의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절도 있는 동작이 행사 끝날 때까지

계속됩니다.





이 번에 두명의 DI가 모자를 반납했습니다.

DI 한 명이 아내의 팔장을 끼고 입장했습니다.

아내가 아들의 DI모자를 벗기고,




원래 해병의 모자를 씌워 주었습니다.


땀에 젖은 DI 모자를 벗을 때

아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그리고 고통스런(?)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돌아가면서 연설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모자를 벗은 DI 동료에 대한 추억과 덕담이 이어졌습니다.


모든 DI들이 빠짐 없이 연설을 했습니다.

이미 모자를 반납한 DI들까지 와서

축하의 인사를 했는데

전통이라고는 하지만 내겐 참으로 지루한 시간이었습니다.






아내의 극성, 혹은 열성?






아들과 같이 사진을 찍은 이가

바로 훈련병 시절 소속된 소대의 DI.

아들은 이 사람을 보고 DI의 꿈을 꾸게 되었다고 하지요.


그는 다른 일로 이 곳에 왔다가

모자 반납식에 우연히 들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아내가 우리 아들의 사연을 이야기 하니 무척 감동을 했습니다.


많은 훈련병이 그의 손을 거쳐 갔음에도

우리 아들만이 유일하게 DI를 지원했다고 합니다.


-나에게 꿈을 준 사람이 있었던가?-

-내가 꿈을 꾸게 한 사람이 있을까?-



7 년이 흘렀다.

Before and After





가운데 둘이 이 번에 DI 졸업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중대 본부 건물 앞에 섰다.

복장 점검은 필수.

아주 몸에 배었습니다.


이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요.

틈만 나면 복장 점검.


틈날 때마다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스스로 점검한다면 ---





드디어 한 장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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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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