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이야기

주말 일기 - 첫 날 1



토요일은 늘 분주하다.

세탁소의 한 주일을 결산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토요일에 직장을 가지 않는다.

그래서 세탁할 옷을 가져 오고 또 찾아가는 까닭에

우리 세탁소의 토요일은 평일의 두 배 가량 바쁘다.


아내는 벌써 몇 주 전에 토요일에 떠나서 일요일에 돌아 오는 

1 박 2 일의 미니 여행을 계획했다.

아내의 여행 결정이 나는 순간,

아내는 천당,

나는 지옥 비슷한 삶을 시작한다.


같은 상황을 정 반대로 바라본다.

아내는 주로 밝은 면을

나는 어두운 면을 먼저 본다.


여행이 주는 일탈의 즐거움을 아내는 미리 가불해서 즐기는 반면,

나는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야 하는 

비정형의 불편함을 걱정하기 시작한다.


세탁소가 한가한 겨울이라면 몰라도

4 월 중순이면 살살 부는 봄바람에 연실 풀리고 연이 하늘로 오르듯

그렇게 사업도 상승할 때라

바쁜 시간에 빠져나가서 생겨야 하는 걱정을

나 역시 가불해서 하게 된다.


아내의 용감무쌍함이 늘 부러운 한 편,

(그래서 나는 아내를 '철 없는 아내로 부른다)

내 입장은 조금 옆으로 미뤄두고

몇 시에 출발할 수 있냐고 

달뜬 목소리로 물어올 때의 그 압박감을 견뎌야 하는

나의 팔자에 대해 가슴을 칠 때가 이런 경우이다.


전날부터 갑자기 초여름 날씨를 보여서인지

토요일 아침은 일찍부터

세탁소는 손님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한가하던 세탁소가 활기를 띠게 되면

마음 속으로 반겨야 하는 게 당연한 이치이지만

실상은 그 반대로 근심으로 내 속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참 사람의 마음, 

특히 내 마음이란 참으로 요물스러울 때가 많다.


'과연 아내가 데드 라인으로 정한 열 두 시까지 세탁소를 떠날 수 있을까?'


전 날 늦은 시간까지 열심히 일을 한 결과,

요전 열 한 시 쯤 되니

토요일에 해야 할 작업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열 한 시 반 쯤 내가 가게 문을 나서도

남은 직원들이 충분히 나머지 작업을 마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 마음도  풍선에 헬륨 개스가 차듯이

서서히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디를 가는 기쁨 때문이 아니라

아내의 데드 라인에 맞출 수 있어서 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아내의 계산으로는

우리의 목적지인 Cape Cod의 일몰을 보기 위해서는

여유를 가지고 가기 위해서는 다섯 시간 정도는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바닷가의 일몰 사진을 찍게 해 주려는 의도가

깔려 있음을 알면서도 아내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늘 시간 때문에 허둥대고

조바심을 내는 내는 내 성격이 참 원망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일단 떠나면

나는 등 뒤의 일을 잘 잊는 경향이 있다.

카메라를 챙기고

아내가 준비한 음식도 차에 실었다.

일단 차의 시동을 걸고 나면 앞만 보게 되는 건 일종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아침부터 달아오르던 기온이

차에 타니 마치 온실 솔을 연상하게 했다.

엊그제까지 히터를 틀었는데

할 수 없이 에어컨을 틀어야 했다.


연극이 시작하게 전에

암전의 시간이 주어진다.

바로 전까지의 일상을 잊고 징 소리와 함께 

새로운 연극의 세계로 빠져들 듯이

차의 시동을 거니 비로소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수 없는 출발을 했음에도

출발은 늘 새롭다.


내가 여행을 가는, 

그리고 그것이 제공하는 긴장을 즐기는 

으뜸되는 까닭이다.




맑았던 날씨가

목적지에 이르니 완전히 흐렸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람이 분다  (0) 2018.04.25
주말 일기 2 - 여정 (Journey)  (0) 2018.04.17
정신일도 하사불성  (0) 2018.04.11
바닷가 산책  (0) 2018.04.09
봄맞이 골  (0) 2018.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