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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미 대륙횡단

Arizona의 Seligman에서 만난 독일 사람들



Seligman의 벽화

오래 된 차의 옆 창을 통해 찍었음



아리조나 주의 Seligman이라는 마을이 있다.

원래 지명은 'Prescott Junction'이었다고 하는데

운송수단이 철도가 갑이던 시절엔

꽤 번성했던 모양이다.


우리의 미국 횡단 여행의 줄기가 66 번 도로였는데

다른 곳의 66 번 도로와는 달리

Seligman에는

옛날 66 번 도로의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동서 횡단 고속도로인 IS 40이 지나가기에

이젠 별로 쓸모가 없어진 66 번 도로와

그 주변의 상가는 쇠락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던

다른 곳과는 달리

Seligman의 66 번 도로 주변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우리가 들렸던 66 번 도로 주변의 모습은

한결 같이 우울하고 피폐한 모습을 해서

애잔한 마음이 들곤 했다.


그럼에도 Seligman이

관광 명소로 지금까지 명성을 날리고 있는 것은 

2 차 대전후, 참전했던 용사들이 이 길을 지났고

다른 자동차 여행자들도 이 길을 많이 이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66 번 도로를 여행하면서

특별히 Seligman이 인상에 남는 것은

잘 보존되고 가꾸어진 풍경 뿐 아니라

거기서 만난 예닐곱 명의 독일인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독일인 단체 여행객들로

LA를 출발해서 모터 사이클(오토 바이)을 타고

서부 여행을 하는 중이었다.


그들은 뮨헨 출신이었는데

내가 분데스 리가의 바이에른 뮌헨 축구팀에 대해

아는 체를 하자 금새 말 길이 트였다.

 

그들은 모두 'Harley Davidson'이라는 브랜드의

오토바이를 빌려서 타고 다니는데

하루 대여료가 175 달러라고 했다.

하기야 새 오토바이를 사려면 2민 달러가 넘으니

그럴 만도 했다.


Harley Davidson은 생긴 지가 100 년도 넘는데다가

경제적으로 미국이 어려웠던 시기를 지나

지금까지 번창하고 있는

일종의 미국의 '자존심'이라고도 할 수 있다.


더군다나 2차 대전 때에는

이 회사의 오토바이가 군용으로도 만들어져

전쟁의 승리에 작은 기여를 하기도 했다.

덕분에 어려운 시기도 넘겼다.


2 차 대전의 대표적인 적대국인

미국과 독일.


전쟁이 끝나고 70 년도 더 지난 지금

승전국인 미국 땅,

그것도 2차 대전 참전 용사가 지나던 길을

독일인들이 미국의 대표적인 자존심인 Harley Davidson을 타고

달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나로서는 짐작할 수 없는 복잡한 함수를

머릿속으로 계산하며

그들과 헤어졌다.


(독일 친구들끼리의 단순한 해외 여행일 수도 있는 걸 괜히 나만 복잡한 셈법 하느라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 걱정도 팔자다.)


http://blog.daum.net/hakseonkim1561/1899




Seligman으로 가는 길.

Arizona의 작은 마을.

노년에 든 한 사람이 모자를 팔고 있었다.



아내는 다 허물어져 가는 모텔 건물의 시세를 알아보며

건물주와 흥정을 하고 있다.

뉴저지 출신의 주인이 제시하는 가격이 100 만 달러. 



66 번 도로 주변엔

버려진 건물이 여기저기 널렸다.




어느 곳에서는 도로가 이어지지 않고

끝이 나기도 한다.







오토바이에 비친 내 모습





독일 친구들은 오토바이에

바이에른 뮌헨 팀의 깃발을 달고 다닌다.





옛 것들을 모아 놓았다.

지난 것이 쓰레기가 아니고

자산, 혹은 유산이 된다는 사실,




길 건너 차 유리창을 통해 본 독일 친구,

그리고 오토바이.

우리도 저 식당에서 핫도그를 사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