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Ford 감독과 John Wayne
어메리칸 인디언들이 사는 나바호.(미국 안에 있는 자치 국가)
그 곳에 Monument Valley가 있다.
이 번 여행 중에 그 곳을 찾았다.
군용 지프차나 픽업 트럭이 아니면
다니기 힘 든 길을 다녀 왔다.
바위를 깨서 만든 길이라 돌이 길 위로 솟아 있고
구덩이도 움푹 움푹 래인 곳이 많아
운전하며 얼마나 가슴이 쫄깃거렸는지 모른다.
평균 시속이 15 mph라고 표지판에 써 있었지만
그 이상 속력을 낼 수 없을 정도였다.
여행 중 차에 큰 무리가 갈 것 같아서
두어 시간 동안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며 운전을 했다.
그러나 붉고 커다란 바위 산 사이의
평지를 따라 차를 달리며(사실은 엉금엉금 기었다.)
차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참으로 장엄하다고 말 할 수 있었다.
그런데 Monument Valley 어느 지점에 가 보니
'John Ford Screen Point'라는 사인이 눈에 띄었다.
John Ford는 미국의 영화 감독으로
이 곳을 배경으로 서부 영화를 찍었고
우리 세대가 좋아했던 배우 John Wayne이
말을 타는 장면도 이 곳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그 곳에 사인이 있었다.
'말 타고 사진 찍는 데 3 달러'
'벼랑 근처까지 가서 찍으면 5 달러'
아내가 내 등을 떠 밀었다.
"이제 안 해 보면 언제 또 해 볼 수 있어요?"
좋게 말 해 권유지만 반 협박이었다.
내 목에 자기 스카프를 두르고
손자에게 주려고 산 보안관 배지까지 달아주며
자기가 더 흥분했다.
이리 해서 나 John Kim은 현대판 John Wayne으로
반짝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그런데 말을 타고 사진을 찍는 곳이
마침 벼랑 끝이었다.
심장이 오글거리기 시작했다.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릿 속을 스쳐갔다.
말이 두어 발자국만 앞으로 간다면
나는 벼랑 끝에서 장렬하게 사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환갑 며칠 앞 두고
환갑 여행 중
환갑이 채 되지 못 한 채
이 세상을 떠나면
세상에 떠 도는 유머 '가장 억울한 죽음' 중
나의 죽음도 한 자리를 차지할 것 같은 불안감이 나를 점령했다.
나를 이런 지경이 밀어 넣은 아내가 야속했다.
그런데 말에 오르는 순간
그런 걱정이 모두 사라졌다.
나를 도와 말에 오르는 인디안 마부 청년의
태도는 아주 태연하고 평화로웠다.
청년의 도움을 받아 말에 오르는데
160 파운드에 달하는 내 체중이
말에게 조금은 영향을 주어 말이 휘청거릴 줄 알았다.
그런데 말은 파리 한 마리가 등에 앉은 것처럼
자기 자리에서 동상처럼
다리 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이었다.
160 파운드가 나가는 내 존재의 가벼움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마치 말 무릎까지 콘크리트로 덮인 것 같다는 착각을 할 정도였다.
이건 살아 있는 말이 아니라
마치 동상위에 올라탄 기분이 되었다.
말 위에 오르니
말을 탈 때까지의 모든 걱정과 근심이 스르르 사라졌다.
그러니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이리 저리 다른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미소를 짓기도 했다.
거기 있던 다른 사람들도 나를 모델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마치 John Wayne이 된 것처럼
우쭐하고 흥분해서
하마트면 영화에서 말을 빨리 달리기 위해
발로 말의 배를 차고(박차를 가한다는 표현) 싶은 충동을느꼈다.
사진 촬영이 끝나고
나는 아무 일(?) 없이
아쉬운 마음으로 말에서 내렸다.
마부 청년은 내가 내린 말을 타고
늠름하고 여유롭게 벼랑 끝에서
30 미터 쯤 말우리로 돌아갔다.
마부 청년과 말 사이에는
아주 굳은 신뢰가 있었다.
말은 어떤 경우라도
다른 사람이 등에 오르면 꼼짝 않고 바위 처럼
한 자리에 머문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어떤 경우에도 지켜지는 신뢰였다.
내가 마부와 말을 신뢰하지 못했다면
영화 같은 장면을 촬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
사람과 동물 사이의 믿음이
사진 몇 장을 남기게 했다.
말을 타고 찍은 몇 장의 사진이
관계 속의 신뢰가
얼마나 많은 일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가를 보여 준다.
John Ford 감독과 John Wayne이 살아 있다면
나 John Kim과 함께 세 명의 John이 의기투합해서
멋진 서부 영화 한 편 찍을 수 있을 텐데----
그나저나 JohnFord 감독님이 날 신뢰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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