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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불(타는)금(요일) 유감

금요일.

 

한국에서는 언제부터 금요일을 지칭하는 말로 

'불금'이라는 단어를 쓴다.

 

실제로 '불금'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으로

이렇다 저렇다 말을 늘어놓을 입장이 못 되지만

아마도 일 주일 동안 직장에 잡혀 잔뜩 움추린 마음을'

바람이 잔뜩 든 풍선의 매듭을 풀어 날리듯

해방시키기 위한 일련의 행위들이 

불금이란 단어 안에 녹아 있는 것 같다.

 

그러니 불금을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는

일 주일 동안 그야말로 개미처럼 일을 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깔려 있다.

 

매일 그 날이 그 날인 백수에게는

불금이라고 특벽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금요일은 그야말로  '해방의 날'이다.

불금은 해방의 날을 축제로

승화하는 날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금요일을 'TGIF"(Thanks God It's Friday)라고 하는데

이런 표현을 보아도 

일에서 해방되는 것이 동서의 구분 없이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 지 알 수 있다.

 

그런 금요일을 난 30 년 넘게

잊고 살았다.

'불금'이니 ,TGIF' 같은 말은

내게는 일종의 사치였다.

일주일에 6 일씩 꼬박꼬박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들은 적어도 내게는 일주일에 5일만 일하는

아주 운 좋은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일종의

특권처럼 생각되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금요일이 한가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오후 늦게서야  끝이 나던 세탁소 일들이

두 세 시면 보일러를 끄고 마감을 할 정도가 되었다.

 

정작 열심히 일하고,

따라서 '불금'을 누릴 자격이 충분하던 때는

불금을 경험하지 못 하고

일이 느슨해진 요즘 비로소 불금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삶의 아이러니가 아니고 무엇이랴.

 

어제도 금요일에도 일찍 일이 끝난 관계로

"기나긴 오후 시간을 어찌 세탁소 안에서 견딜까?"하고

고민 하다가

'DUMBO'로 지는 해를 보러 가기로 했다.

 

아내와 동서 부부에 나까지 넷이서

드디어 '불금'을 위해 길을 나선 것이다.

 

마침 맨하탄 빌딩 너머로 

뉘여뉘엿 

해가 기울고 있었다.

 

그런데 순식간 해가 지더니

하늘이 빨갛게 물이 들었다.

 

구름과 함께 서쪽 하늘이 비현실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세상의 모든 붉음을 모아  놓은 것 같은 그런 '붉음'으로

'불금'의 저녁 하늘이 타들어갔다.

 

우리는 해가 지고 난 하늘을

아쉽게 쳐다 보다가

그 자리 떠나 부르클린 다리를 걸어서 건넜다.

 

멀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초록색으로 빛나고 있었고

맨하탄 다운타운의 건물들도

반짝거리고 있었다.

 

아파트에 돌아 오니

그 진한 분홍빛으로 타던 하늘빛 때문이지

목이 말랐다.

 

마침 사다 놓은 맥주 한 병을 들이켰다.

 

순식간에 내 얼굴이 붉어졌다.

내 얼굴에서 노을이 타고 있었다.

 

저녁 노을 빛도 내 뺨에 물들어서인지

다른 때보다도

내 얼굴은 더 붉었다.

 

그래 불금이 별 거던가,

이렇게 해와 술 한 잔에 붉어지는 얼굴처럼

마음도 붉게 타 오르면

그게 '불금'이지.

 

30 년도 넘게 한 번도 경험하지 못 한 불금을

하늘도 붉게 타고내 얼굴도 붉게 탔으니정말 제대로 보낸 것이라고 어깨 한 번 으쓱이며노을의 흔적이란 말끔히 사라진 내 얼굴을 천천히 쓰다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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