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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반면교사

 

어제 아침에 한 청년이 세탁소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두 잔 째 커피를 비웠을 때이니 

오전 10 시 반에서 11 시 사이였을 것이다.

 

바지 하나를 들고 와서 길이를 줄여달라고 했다.

그 청년은 긴 생머리에

야구 배트가 든 가방을 메고 있었다.

 

야구 연습이나 경기를 위해 어디론가 가는 길이었음을 짐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바지 길이를 재고

티킷을 프린팅 하려 하는데

그 청년은 미리 돈을 내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리 하라고 했다.

 

그 청년은 20 달러를 내고

나는 잔돈과 함께

'PRE -PAID IN FULL'이라고 선명히 인쇄된 영수증을 내밀었다.

그랬더니 그 청년은 영수증은 내게 도로 내밀며

오후에 자기 친구가 자기 대신

옷을 찾으러 올 것이라고 해서

내가 다시 받아 잘 보관하며

그 친구에게 영수증 번호나 전화번호를 알려 주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청년은 가게를 나서는가 싶더니만

갑자기 방향을 돌려 내게로 다가왔다.

 

불안한 기운도 함께 묻어왔다.

 

이런 경우 반가운 소식을 가지고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야 할 것이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는

드라마 속의 대사를

우리는 이런 경우에 인용하고 하는데

바로 그 상황이 내게 닥친 것이었다.

 

청년은 자기가 내게 20 달러를 주었는데

거스름돈을 돌려받지 않았다는 주장을 했다.

 

나는 분명히 준 것 같은데

그 청년이 아니라고 하니

순간 머릿속이 흰 종이처럼 하얘졌다.

머리가 질려버린 것이었다.

 

돈을 받은 기억은 있으나

거스름 돈을 돌려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나름 거스름 돈을 주었다는 

나름 확신이 있었다.

 

왜냐하면 무의식적으로도

일정한 매뉴얼대로 내 손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손님의 돈을 받고

거스름 돈을 주고 난 뒤

'OK'버튼을 눌러야 비로소 영수증이 인쇄되기에

거스름 돈을 주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손님 몇이 가게에 있었고

내가 실수로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니

더 시간을 끌 수도 없어서

나는 청년의 요구대로 거스름 돈을 퉁명한 태도로 내밀었다.

내가 맞지만 자비를 베푼다는 태도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찜찜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그런 실수를 했다는 것이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았다.

 

시간이 좀 지나 세탁소가 한가한 틈을 타서

캐시 레지스터의 돈을 확인했다.

마침 손님 몇이 다녀가지 않은 상태여서

돈을 세어 확인하는 일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확히 한 번 더 준 거스름 돈의 액수만큼 돈이 비었다.

 

나는 그 청년에게 전화를 걸어서

나는 정확하게 거스름 돈을 돌려준 것 같으니

다시 잘 확인하라고 말했다.

그 청년은 내가 참 끈덕지다는 투로

자기는 더 받은 거스름 돈이 없다는 식의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알았다고 대답을 했다.

내가 전화를 한 것은

혹시라도 그 청년이 실수를 하고 모를 수도 있으니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다는 교훈을 알려주려는 의도가

거의 전부였다.

 

청년의 반응을 대하며

나는 마음을 접었다.

돈은 이미 내게서 떠났고

내게서 떠난 것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나는 그 청년의 바지를

정성껏 다린 후 포장을 끝냈다.

(바지를 다리는 것은 별도의 비용이 추가되나 나의 너그러움으로 그냥 서비스했다.

 

그런데 바로 그즈음 청년에게 전화가 왔다.

처음엔 주머니만 뒤져서 거스름 돈을 확인했는데

찾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자기가 메고 있던 가방 안에서 문제의 거스름 돈을 

발견했으니 잘못은 자기에게 있으며

옷을 찾으러 갈 자기 친구에게

거스름 돈을 돌려주라고 

자기 대신 옷을 찾아갈 친구에게도 일러두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찾을 돈보다도

그 청년이 귀한 교훈을 얻을 것이 더 기뻤다.

 

나는 진실로 그 청년이 고마웠다.

돈을 찾고 나서 내게 전화를 한 그 용기가 고마웠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도

알거나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얼마나 자주 나만 옳다는 착각을 하며 살고 있는 지를 

깨우쳐 주었기 때문이다.

 

육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나는 얼마나 내가 옳다는 의식으로

남들을 단죄하며 살아왔을까?

 

누군가의 본보기가 되기보다

반면교사로 살지는 않았는지---

 

그 어떤 경우가 되었건

남에게 도움이 되었고

칭찬받는 삶을 살아왔으니

'그만하면 잘 살았다'라고 

내 등을 토닥여주고 싶은 날이다.

 

습기가 가신 맑은 가을바람 속에

재잘재잘 나를 칭찬하는 무수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1960년대 중국 문화대혁명 때 마오쩌둥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마오쩌둥은 부정적인 것을 보고 긍정적으로 개선할 때, 

그 부정적인 것을 '반면교사'라고 하였다. 

이는 혁명에 위협은 되지만 사람들에게 교훈이 되는 집단이나 개인을 일컫는 말이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반면교사 [反面敎師]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