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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듣고 싶은대로 듣기

일요일 새벽 


"몇 시야?"


내 뒤척이는 기척에 아내가 잠에서 깬 것 같아서

아내에게 물었다.


노안 때문에 내 전화기 오른 쪽 위에 나타나는 시간이 보이지 않아서였다.


"4 시."


요즈음 젊은 시절 근시 덕으로

가까운 글씨는 잘 보이는 아내가 자기 전화기로 확인하고

내게 시간을 알려 주었다.


난 이미 30 여분 전에 잠에서 깼다.

일요일 아침 축구를 할 수 있을 지가 걱정이 되어서인지

깊은 잠에 들지 못하는 까닭이다.


토요일 저녁부터 슬슬 흩뿌리는 비가 

여즉 오는 지 확인하기 위해

부엌에 있는 skylight 아래에 서 보았는데도 

아무 소리를 듣지 못했다.


어제 저녁엔 부엌의 지붕에 난 창 위에서

우두둑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렸는데

오늘 아침엔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희미한 눈으로 창문을 통해 

물기 젖은 데크의 표면을 

유심히 관찰을 했는데도 

빗방울 떨어지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더 눈을 붇혔다가

축구를 하러 가려고

다시 자리에 누웠더니

아내가 그 기척에 잠을 깬 것 같았다.


"비가 안 오는 것 같아."


작은 소리로 혼잣말처럼 이야기 했는데 아내가 그 소리를 들었다.


"아니 저 비 오는 소리가 안 들린단 말이야?"

"저렇게 크게 들리는데도?"


띠가 개띠라 그런지 소리에 예민한 아내가 

빗소리를 못 들은 내 귀가 정상인지 

의심하는 투로 말했다.


연전에 집수리를 하면서

보온재를 벽에 넣었는데

웬만한 천둥 소리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집의 방음이 잘 되는데도

아내는 미세한 빗소리를 들은 것이었다.


사실 문을 열어 확인하고 싶었지만

아내가 잠에서 깰까 그리하지 못 했던 것을

눈을 뜬 김에 문을 열었다.


뒷마당 나무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집 안으로 우두둑 우두둑 밀려 들어 왔다.


축구하러 갈 생각으로 부풀어 있던 가슴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가라 앉았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비가 그친다면

물 잘 빠지는 운동장의 잔디 위에서

축구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이 

그 때까지는 남아 있었다.


"그럼 오늘 일기예보 좀 봐 줘."


전화기로 일기예보를 확인한 아내가 대답했다.


"비는 4 시에 그칠 거라네."


"Oh, Yes!"


아내의 말에 

내 입에선 탄성이 나왔다.

오늘도 거르지 않고 축구를 할 수 있음에

흥분도 되고 

감사한 마음이 

이스트를 넣은 밀가루 반죽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런데 마구 부풀어 오르던 밀가루 반죽 같은 마음이

푹 가라 앉는 데는 1 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오후 4 시."


아내의 입에서 이어 나온 대답.

앞으로 열 두 시간은 더 비가 온다는 소리다.


오전 4 시와 오후 4 시 

둘 사이의 그 긴 거리.


축구는 물 건너 갔다.


살면서 

듣고 싶은 대로 들은 것이 어디 이 번 뿐이 아닐 것이다.


들리는 소리를 바깥 귀로만 듣고

귀 안의 귀로 듣지 못하고 사는 삶.


그러고 보니 빗소리가

창문을 넘어 '우당탕'하고 집 안으로 들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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