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바닷가로 바람을 쐬러 나갔다.
햇살의 빛깔이 하도 고와서
차를 곁길에 세우고 지는 해의 빛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런데 빈 터에 해바라기가 피어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대부분의 해바라기들이
해를 향하지 않고
사진을 찍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를 바라보지 않는 해바라기도 해바라기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잠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그 의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도 해(Sun)이기 때문이었다.
내 이름 끝 자가 '선'인데
누가 내 이름을 부르면 학썬으로 들린다.
이 소리가 영어의 해를 뜻하는 'Sun'과 거의 같아서
나를 뜻하는 단어로 'Sun'을 사용한 것이 40 년이 넘었다.
내 블로그의 닉네임도 'Sun'이다.
대학 다닐 때의 내 취미가 책 사모으기였는데
끼니를 걸러가며 사 모은 책에는
빠짐없이 'Sun'이라는 나의 서명이 들어가고
내 방의 벽면을 거의 덮을 지경에 이르렀다.
내 자신을 포함해서
수많은 '해'들이 모여 사는 내 방은
얼마나 밝았 것이며
또 얼마나 뜨거웠을 것인가?
그러나 이름에는 'Sun'이 들어가긴 했어도
실상 내 성격은 뜨뜻미지근하다.
그것은 사람과의 사이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한창 이성에 눈이 뜨이기 시작하고도
마음에 드는 여인에게
가까이 가지도 못 하고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니 내 한 평생 나를 바라보는
해바라기 하나 없는 단조롭고 허허로운
해의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6 년 전인가 그녀가
시집 하나를 아내에게 건네줄 때까지는 말이다.
그녀는 나와 대학 4 년을 같은 과를 다녔다.
그녀는 고양이 같았다.
부드러운 털을 가지고 있지만
날카로운 발톱도 숨기고 있는-----
같은 과의 남학생들이 설익은 수작을 붙였다가
그녀의 발톱에 할퀴어 얼굴 팔리는
치욕을 당한 것이 어디 한 두 번이었던가---
그녀는 4대 문 안에 있던 명문 여고의 문예반장 출신이어서
들리는 소문으로는 고교시절부터
그 세계에서는 필명을 날리고 있었으니
1차 시험에 낙방하고
허무함 때문에 홧김에 국문과를 지망한 나 같은 얼치기와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4 대 일간지의 신춘문예에 소설로 당선이 되었고
모 방송국의 드라마 공모에도 대상을 차지한 재원이지만
나의 관심을 끌지는 못 하였다.
새침하고 당당한 그녀는
남학생 사이에서는 늘 술자리의 안주 같은 존재였지만
나는 그녀의 글재주 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 학교 다니면서
그녀와 단 둘이 커피 한 잔 마신 적도 없을뿐더러
말을 섞은 적도 없었다.
기억을 해 보니
학창 시절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오르기는 한다.
"학선씨는 너무 뜨거워서 옆에 가면 녹을 것 같아."
그러던 그녀와 가까이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미국에 이민 와서 10년이 넘어서
처음으로 한국에 갔을 때
대학 동기들끼리 모인 적이 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그녀도 그 자리에 나왔다.
그때 나는 미국에 살기로 마음을 먹고
시민권을 얻은 상태였다.
우연히 시민권 얻은 이야기를 했더니
그녀는 내 손을 잡고 "왜 그랬냐고" 울먹이며 물었다.
뜬금없는 그녀의 태도에 당황했었다
"아니 내 인생에 왜 그리 관심이 있는 거지?"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후
1 년 반인가 교편을 잡다가
미국 와서 이민 생활 10 년이 넘겼으니
그러지 않아도 데면데면했던 그녀와의 사이는
거의 15 년이라는 시간만큼이나 더 멀어져 있을 때였다.
나는 그녀가 술김에 말 그대로 '오바'했던 걸로
치부하고 그냥 지나쳤다.
나의 무관심과 함량 미달의 센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녀도 나를 바라보는 '해바라기'였을 수도
있음을 지나친 것은.
그녀와는 친구로서
지금까지 지내오고 있는데
6 년 전인가 한국에 갔을 때
내게 시집을 한 권 내밀었다.
그것은 내 소유였던
미당 서정주 선생의 시집 '질마재 신화'였다.
그것이 내 책임을 바로 알 수 있었던 것은
내 서명 'Sun'을 보고서 였다.
삼국유사의 설화를 바탕으로 쓴 시를 엮은 시집이었는데
이 정도면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치기로
모작을 하기 위해 곁에 끼고 다녔다.
내가 알지 못하던 사이에
그녀는 내 책을 슬쩍 한 연후에
몇십 년을 지니고 있다가
아내를 통해서
내게 돌려준 것이었다.
나는 그 시집이 사라진 것도 모르고
몇십 년을 살았고,
그 몇십 년을 그 녀는 그 책을 곁에 두고 살았다.
"그녀도 나를 바라보는 해바라기였을까?"
아무래도 좋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던 해바라기였든, 아니든
무슨 문제가 될 것인가.
비밀스러운 해바라기 하나쯤 가슴속에 품고 사는 것이
삶의 윤기를 더 해 줄 수도 있는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내가 찍은 해바라기 사진을 보고
자기가 원조 해바라기라고 하는
아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40년 넘게
때론 미지근하고
때론 썰렁한 나라는 Sun을
은근슬쩍도 아니고
아주 티 나고 노골적으로
해보다 더 뜨겁게
나만 바라보는
해(Sun) 바라기와 눈 맞추며
며칠 동안 흐리고 비가 오다가
새로이 뜨는 해를 맞이하는
오.늘.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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